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서야 했다 1

50대 여성 재취업 분투기] 9 _ 경력단절의 의미를 생각하다 1

by 블루문R

여성취업지원 사업으로 개설된 '취업 교육'을 듣고 있다. (여성취업지원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번 글에 담았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이며 온라인으로 수강이 가능하니 편리할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신청했다. 내가 선택한 강의 중 하나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법'. 십수 년 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중이니 들어두면 도움이 되겠거니 싶었다.

300명이 넘는 여성 취업 지원자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강사는 이력서의 형식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각 항목마다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온라인 강의를 재생해 놓고 딴짓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듣고 있자니 꽤나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다. 자격증 항목에 운전면허 자격증을 넣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고, 경력은 최근 것부터 써야 한단다.


강사가 이력서에 경력을 적어 넣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댓글 창에 '쓸 경력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한 명이 질문이 올리니 여기저기서 '나도 그렇다', '10년 전 경력을 써도 되냐', '자격증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강의를 듣는 대상이 여성 취업 지원자들이고 그중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이 높으니 나올법한 질문이었다.

강사는 "10년 전 경력이라도 써도 된다, 자원봉사 한 것이나 작은 소모임을 한 것 등 찾아보면 경력이 될 만한 것들이 있다, 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라, 그러다 보면 자기소개서에도 쓸 것이 있다"라고 답했다. 낙담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 보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계속된 실패 속에 있는 나는 또다시 삐딱해졌다. '그런 경력들 써넣어 봤자 취업이 되냐, 자격증이든 뭐든 있어야 하지...' 강사가 헛된 희망을 불어넣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한 편으로는 아이들 키운다고 아무 경력도 만들지 못한 당신들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반대쪽으로 삐딱한 생각도 고개를 쳐들었다. 아이들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강사도 탓하고 수강생들도 탓하다가 문득, 나의 한 시절이 떠올랐다.


chris-montgomery-smgTvepind4-unsplash.jpg



독박 육아로 아이들을 키웠던 나는 둘째 아이 두 돌을 넘기고서부터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는 분을 통해 강의 일을 제안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출산 전에 했던 일과 관련된 분야의 강의였다. 토요일 오전마다 반복적으로 개설되는 강의니, 남편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어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한 회 강의료는 40,000원. 적다고 하면 적은 돈이고 크다고 하면 큰돈이었다.


다행히 강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잘 맞았다. 집에서 강의 준비를 할 수 있고(아이들 재워놓고 새벽까지 강의자료를 만들었다), 내가 집을 나설 수 있는 때(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때 말이다)에 주어지는 강의를 받으면 된다는 일의 특성도 있었지만, 강의라는 일 자체도 재미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강의라는 직업이 꽤 좋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강의가 좋았다, 도움이 됐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기 시작했고, 나를 강사로 추천해 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런 만큼 더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강의 준비를 했다.


diego-ph-fIq0tET6llw-unsplash.jpg



일하고 공부하는 정신없는 가운데 아이들은 자랐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이가 7살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가고, 강의라는 일에 익숙해지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영어시험부터 봐야 하는 꽤 어려운 도전이긴 했다. 그래도 남는 시간에 꾸준히 공부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머리가 굳기 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밀어붙였다. '이제 새벽까지 강의 자료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의에 익숙해졌으니,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관련 문제집을 구입해서 조금씩 들춰보기 시작했다. 막상 실제로 접해보니 어렵기는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가면서 자격증 취득 공부라는 것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삶이란 건 원래 그렇게 평탄하게 흐르지 않는 법이다. 나는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자격증 취득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엉뚱한 곳에서 받은 위로와 격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