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 (9)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

by epoche

“아직 안 오셨나?”

업무 미팅 차 카페에 왔는데 아직 상대가 안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 싶은 맘으로, 구석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재생했다.


“간밤에 WTI 선물 유가가 배럴당 마이너스 37 달러에 거래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선물 만기 도래와 저장고 부족이라는 현상이 빚어낸 전대미문의 기현상. 마이너스 가격이라는 게 쉬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만기일에 현물은 물론 돈까지 줘야 된다는 건가? 코로나로 인해 비상식적인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 과장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김서후 과장은 인도 비즈니스로 2 년 정도 손발을 맞췄었다. 창현이 형과 같은 상사에 근무하는데, 여리여리한 겉보기와 달리 의뭉스럽고 다소 음흉한 구석도 있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예, 뭐, 요즘 같은 시국에 자가호흡 가능하면 잘 지내는 거죠. 과장님이랑 가족분들도 다 안녕하시죠?”

“네, 와이프랑 애들 모두 그럭저럭 건강합니다.”

코로나가 서로의 가족들 안부까지 묻게 만드는 순기능도 했다


“그나저나 비즈니스는 완전 올스톱이 돼 버렸네요.”

“안 그래도 잘리기 전에 사표 내야 되나 고민 중입니다.”

“무슨 사표를 내요. 곧 이러다 수그러 들겠죠. 조금만 더 버터보시죠.”

사실상 내수 시장이고 수출 시장이고 수요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실물 경제가 이 모양인데 주식 시장은 오르는 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무역으로는 돈벌이가 안 되네요...”

서후 과장이 허여멀건 손으로 앞에 놓인 컵을 만지작대면서 얘기했다. 그의 밭게 잘린 손톱이 내 가슴을 할퀴는 거 같았다.


“뭐, 제조업도 마찬가지죠. 파는 놈만 있지 사는 놈이 없으니...”

“대리님은 주식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최근에 들어가셨으면 많이 버신 거 아닌가요?”

“에이, 벌기는요.. 다 날려 먹고 호흡기 뗄 뻔하다 지금 겨우 픽 하나 받아서 겨우 목숨 부지 중입니다.”

서후 과장의 옴팍한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대리님도 선물하셨나요?”

“아뇨, 선물은 할 줄도 모르고 워낙 위험하다고 들어서.. 해외선물 유투브 방송은 매일 보긴 합니다.”

“아, 선물은 안 하시는군요. 다행입니다.”

“저깟놈은 선물해서 날리나 현물해서 날리나 뭐 날리는 건 매한가지인데요 뭘... 근데 선물은 갑자기 왜요?"

"아, 그게..."

그가 약간 머뭇대는 모습을 보니 더 궁금해졌다. 나는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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