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 (15)

by epoche

장전부터 뭔가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갑자기 200만 주, 24억 원어치 물량을 시위하듯 슬쩍 보여줬다 빼는, 세칭 ‘세력 형님'까지 출몰했다.


‘이건 뭐, 시그널 같은 건가?’

약간의 설렘과 달리 막상 장이 개시되자 지지부진했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실망감과 함께 다시 업무에 매진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른 뒤, 화장실에 가서 용무를 보기 전 잠금 화면을 해제하고 주식 앱을 켰다. 지퍼를 내리고 있는데 자동 로그인이 완료되며 계좌 화면이 떴다.


“엇, 플러스 15%?”

다급한 마음에 잔뇨와 함께 용무를 대강 마무리했다. 대충 손에 물만 묻히다시피 하고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초조한 마음에 1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번갈아 연신 두들겨댔다. 화면 속에서는 매수세가 본격화되며 주가가, 내 몸과는 반대 방향으로 치솟고 있었다.


“17… 18%.”

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안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리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는 안 과장. 역시나 목소리가 다소 격앙돼 있었다.


“드디어 오늘인가요?”

“그러게요. 딱히 나온 굿 뉴스는 없는데, 갑자기 뜨네요.”

수화기 너머로 마우스를 연신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짐작컨대 뉴스를 계속 새로고침 중인 듯했다.


“뭐, 우리가 모르는 고급 정보가 증권가에 샌 거 아닐까요?”
“혹시 FDA 승인 낭보 아닐지요?”

하긴 FDA 승인 소식이라면 회사 측에 먼저 전해졌을 테고, 알음알음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퍼졌을 공산이 컸다.


“그거라면 이건 뭐, 아직 시작도 안 한 거 아닙니까?”
“그럼요. 신풍 생각하면 이건 오줌 찔끔 한 정도죠.”
“저희 둘 다 이제 슬슬 기저귀 준비해야 쓰겄는데요.”

주거니 받거니, 이상동몽으로 한바탕 떠들고 나니 이미 뭐라도 이뤄진 양 마음은 둥둥 하늘에 떠 있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만큼은 일부러 주가를 보지 않았다.


딱 층에 내리자마자 선물 리본을 푸는 마음으로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잠시 주춤주춤, 횡보하는 모양새였다.


‘뭐, 그간에 적체된 악성 매물을 소화하는 국면이라 보면 딱히 나쁜 것만도 아니겠지.’

어느새 눅눅해진 컵홀더를 빼 쓰레기통에 버리고, 얼음이 다 녹아 희석된 음료도 캔틴 개수대에 비웠다. 이윽고 정수기에서 맑고 깨끗한 물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도 딴청을 부릴 새도 없이 긴급한 업무가 생겨 오전 근무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임박하자 삼삼오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행렬로 사무실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여느 때와 달리 딱히 선약도 없었고, 약속을 잡을 겨를도 없던 터라 내친 김에 고객사에 메일 한 통을 더 쓰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난중일기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