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 (16)

by epoche

‘딸깍.’


정오가 되자 사무실의 모든 불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평소라면 근처 식당에 가서 메뉴를 주문하고 있었을 시간. 홀로 남겨진 텅 빈 사무실과 적막한 어둠이 낯설게 느껴졌다. 창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먼지 섞인 공기를 비췄고, 그 고요함은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동시에 묘한 집중력을 선사했다. 내친김에 지난번 하다 만 엑셀 작업까지 마무리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띵동.’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으레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했다. 딱히 개장과 큰 차이는 없었다. 통상 점심시간엔 큰 변동이 없는 편이라, 식사할 때만큼은 주식창을 보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 했다.


“뭐, 지수도 그렇고 오늘은 강보합 정도로 끝나겠네…”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피크 타임을 비껴간 구내식당은 한산했다. 식단표에는 한식, 양식, 샐러드, 그리고 라면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필이면 샐러드와 라면이 같은 코너에서 배식 중이었다.


‘그래, 이럴 때라도 야채 좀 먹자.’


건강을 챙기겠다는 명분으로 분식 코너 앞에 섰지만, 코끝을 찌르는 진한 라면 수프의 유혹을 이길 재간은 없었다. 결국 쟁반 위에 올라간 건 푸르른 채소가 아니라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노란 면발이었다.


‘뭐, 라면도 생각보다 건강식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니까.’


자기 합리화를 해봤지만, 이런 사소한 선택조차 충동에 맡겨버린 스스로가 얄궂게 느껴졌다. 혼밥의 적적함을 달래려 스마트폰을 켜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라면 한 그릇에 어울릴 법한, 서글프면서도 희망적인 노래 하나를 골라 재생했다.


그리고 식사 시간만큼은 금기처럼 여겼던 MTS를 무의식 중에 터치했다. 샐러드 대신 라면을 고른 순간, 그 원칙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로딩 화면이 뜨는 동안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라면을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국물 몇 방울이 툭, 화면 위로 튀었다. 황급히 소매로 닦아내자 마침 앱이 열렸다.


그 순간,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 시뻘건 장대양봉이었다. 그간 나를 실망시켰던 지저분한 위꼬리들을 단숨에 집어삼킨 채, 캔들은 거침없이 상한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선명한 양봉만큼이나, 귀를 파고드는 낡은 노랫말이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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