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에는 낮에 보았던 시뻘건 불기둥이 아른거렸다. 비록 기둥의 끝자락이 가늘게 갈라지며 위꼬리를 남기긴 했지만, 그간의 지루한 기다림에 대한 보상치고는 꽤 쏠쏠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내 기대치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 가 닿아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아까 안 과장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다시금 복기했다.
“네? 매도 사인이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였다. 이제 막 엔진이 가열되기 시작했는데 다 팔고 내리라니. 섭섭함을 넘어 가슴 한구석이 헛헛해졌다.
“네, 대리님. 사실 이게 저희 회사 친한 차장님 지인들이 운영하는 ‘부띠끄’에서 작업하는 거거든요.”
“부띠끄요?” “아, 일종의 사설 투자업체인데, 소위 말하는 ‘작전 세력’이죠.”
지금껏 펼쳐진 일련의 급등이 치밀하게 설계된 작전의 결과였다니.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의 매도 신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아무리 조막손 세력이라도 고작 20% 좀 넘게 먹고 엑시트(Exit)하겠다는 건가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 안 과장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사실, 그 형님들도 미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대요. 혹시 ‘원 회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원 회장이요?”
이 좁은 땅덩어리에 웬놈의 회장이 이리도 많은지. 원 회장은 또 누구란 말인가.
“네, 명동 사채 시장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물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채요? 사채라면… 영화에 나오는 조폭 같은 건가요?”
찰나의 순간, 검은 양복을 입은 덩어리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휘두르는 잔상이 뇌리를 스쳤다.
“아, 그런 하급 사채업자들하고는 결이 좀 달라요. 기업 사냥이나 자금줄 역할을 하는 큰손이죠.”
“아… 혹시 공시에 계속 뜨던 CB(전환사채) 물량, 그게 그 사람 건가요?”
“맞습니다. 그 사채 주인 중 한 명이 바로 원 회장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필로스는 이제 위험하니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이른바 ‘촉수 엄금’의 당부와 함께 통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최근 공시들을 샅샅이 뒤졌다.
전환사채(CB)란 말 그대로 이자와 원금을 보장받는 채권이면서도, 원할 때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증권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 차익을 챙기고, 내리면 원금을 받으면 되는 그야말로 ‘꽃놀이패’.
“음... 전환가액이랑 현재 주가랑 별 차이가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만약 원 회장이라면, 고작 이 정도 수익에 만족하고 판을 접을까? 조막손도 아닌 이 바닥의 거물이라는데, 겨우 10% 수익은 수수료 떼고 나면 인건비도 안 나올 수준이었다. 나는 다시 차트를 켜고 캔들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이게 만약 진짜 대상승의 서막이라면….”
불현듯 창현이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5연상을 코앞에 두고 고작 10% 남짓 챙겼다가, 이후 치솟는 주가를 보며 밤새 배앓이를 하던 그 처절한 모습.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나는 소스라치며 주식 앱을 켜고 예수금을 확인했다.
‘그래, 내일 한번 끝을 보자.’
결심이 서자 천장에 비친 불기둥이 아까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