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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Dec 23. 2022

특별하지 않은 날에 걸려온, 특별한 전화

늘 똑같은 금요일이었다.

일주일 중 배송 마지막 날이라서, 금요일은 항상 여유가 없을 뿐이었다.

쇼핑몰 주문이 많은 날엔 작업량과 배송 압박이 함께 와서 더 여유가 없고, 주문이 많지 않은 날에도 주말 배송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감의 압박이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오전부터 재봉틀을 돌리고, 한 통의 상담전화를 받고 오늘은 택배 마감시간 안에 완성이 가능할지 내겐 얼마만큼의 여분의 시간이 주어질지 계산도 한창이었다.     

휴대폰 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상담 전화라 예상했다. 

내 휴대폰의 모르는 번호는 대부분 상담 전화가 많았다.




차분한 여자분의 목소리.  

   

그린재 맞죠?

네, 맞습니다.

저...... 주문을 좀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런 질문은 늘 익숙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고, 스마트폰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이 생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0세 이상의 여성분들 중 온라인 쇼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제품 상담부터 주문 방법 상담까지, 제법 정성껏 도움을 드려야 했다.  

   

네, 가능합니다. 어떤 제품을 보셨을까요?

저......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봤는데, 맞춤이 필요해서요.    

 

나는 이런 전화가 대부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이즈를 맞춰달라는 경우라서, 흔쾌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하신 고객님의 요구는 조금 난해했다.

     

사이즈는 엑스라지 정도면 좋겠고, 원피스의 윗부분을 터서 입기 편하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지는 허리에 고무줄을 아주 크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하는 의도는 파악했지만, 원피스 윗부분을 터서 단추를 다는 작업은 디자인을 완전히 변경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었다. 나는 맞춤 비용을 계산하고 정확한 허리 사이즈를 다시 물어봤다. 고객님은 그냥 바지통과 허리밴드를 비슷하게 해 달라고 했다. 이 부분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요구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리고 물건을 오늘 밤이라도 퀵으로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안 된다. 오늘까지 완성할 작업이 절대 아니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다. 불가능한 작업임을 안내하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한국의 배송 시스템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통의 쇼핑몰은 물건을 확보해두고 주문을 받으면 발송으로 하지만, 내가 운영하는 쇼핑몰은 100% 주문 후 작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빠른 배송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문을 받을 수 없음에 안타까웠지만, 불가능한 건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시 작업 모드. 상담으로 시간을 조금 낭비했다. 배송 시간과 작업 시간을 다시 계산하며, 속도를 내려는 찰나. 핸드폰 벨이 다시 울렸다. 번호를 보니 조금 전 그 번호였다.     


저기...... 그러면 일요일에 퀵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일요일... 아들과 놀아줘야 하는 시간. 일주일 중 유일하게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 휴일. 안 된다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고객이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이유가 듣고 싶어졌다.     


사실, 제가 입을 게 아니라 조카를 입힐 옷입니다.

지금 조카가 먼 길을 가려고 하는데, 의사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해서...

조카가 어려서 언니가 아이에게 일반 수의를 입히고 싶어 하지 않아요. 예쁜 옷 입혀서 보내고 싶다고...    

 

......

......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이었구나. 그 마음의 간절함이 내게로 온 것이구나.

사람은 언제든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젊디 젊은 딸을 앞세워야 하는 부모가 되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가는 딸에게 예쁜 수의를 입히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나는 감히 가늠한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계산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길에 동행할 나의 옷이 부디 꽃 같은 그녀의 맘에 들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수의라면 옷에 천연소재가 아닌 밴드를 넣는 것은 안 된다며 바지 허릿단에 끈을 달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입히고 벗기기 쉬워야 하니 전체를 앞 트임 해서 단추를 촘촘하지 않게 달아 주겠다고 했다. 또한 추가로 끈을 충분히 여유 있게 만들어 넣어 보내겠다고 했다.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 저녁에 퀵으로 보내겠다고......     


토요일. 그런 이유로 나는 단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특별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디 이 옷이 먼 길 떠날 때 날개처럼 훨훨 그녀를 자유롭게 해 주길.

부디 피지 못한 꽃이라 원망 말고, 남은 미련 없이 아픈 생을 잘 마감하길.

그 어떤 옷보다 정성을 더해 만들면서 빌고 또 빌었다. 


엄마보다 먼저 가는 그 마음에 상처 담지 말고, 딸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에 한이 남지 말길 빌고 또 빌었다. 내가 만드는 옷엔 그런 바람들이 담기고 있었다.     

병원으로 퀵을 보내면서, 남아 계신 분들이 너무 아프지 않길 기도하겠다는 문자를 함께 보냈다. 조카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조금의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그 어떤 이별도 같은 모양은 없다.

모든 사랑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듯이.

이별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러니 견뎌내라고만 한다는 것은 무례한 표현일지 모른다.

이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함께 이야기해 주고, 추억해주며 곁에 있는 일일 것이다.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오늘 잘 계신지 문득 궁금했다. 

밥맛이 없어도 잘 드셨으면 좋겠고, 예쁜 딸을 마음 놓고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오늘같이 흐리고 추운 날엔 그분의 곁에 누군가가 함께 하길 

새로운 기도를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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