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랑 May 17. 2018

그래도 한 발짝.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일 년 만에 귀국한 날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모교를 찾는 것이었다. 


우연히도 스승의 날과 겹쳐, 매년 그랬듯이 꽃과 적당한 양의 초콜릿 그리고 후배들에게 줄 간식을 

양손에 잔뜩 들고는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 잠시 헤매다 금세 다시 방향을 되찾곤 

하나 둘 기억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참 오랜만이었다. 


강원도 산골에 있는 나의 학교는, 갈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느낌과 묘한 그리움을 주곤 했다. 

그렇기에 매년 모교를 방문하는 것은 하나의 과제이자 내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일 중 하나였다. 

어떨 때에는 친구와 함께, 어떨 때에는 혼자. 


사실 혼자 학교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다시 되짚어 보는 일도 빈번했다. 

학교는 나에게 있어 집보다 더 집 같은 존재였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 감정과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이들로 차 있던 곳이었다. 

가장 많이 울었던 곳이자, 행복했었던 곳이자, 지나가는 모든 곳 - 그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곳이다. 


2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푸르른 나무들을 바라보면, 익숙한 표지판과 냄새, 그리고 흙먼지가 약간 있는 그곳은 

너무나도 오랜 시간 나의 미련을 붙들고 있었던 곳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날들. 

바람이 불어도 반짝이는 별들을 세며 옥상에서 도란도란 떠들던 날들. 

어두운 밤, 찌르찌르 하며 울던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는,  오직 너와 나 둘 만 있던 그 시간. 

몰래 낮잠을 자던 그 다리 위. 

아침을 함께 맞이하던 그 순간들. 


여전히 아름다운 그 기억들에게.

나는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젠 정말 미련 없이 돌아설게요. 

라며 

교문 앞에서 나는 그 시간들과 장소에게 인사를 했다.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고도 - 이미 수백 번의 작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 당신이 꿈에 나와요. 


너와 보낸 모든 시간을, 감정을, 순간을 거기에 두고 그곳은 변치 않는 장소로 - 하나 둘 생각의 박제로. 

간절히 빌었던 그 날. 


나도, 내 이야기 속의 너도, 우리 모두 계속해서 과거에 매여있었던 날들에게 작별을.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라고 환하게 웃으며 다시 닫아둔 이야기를 후후 불어 

꺼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래도 이번 작별 역시 나에게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더 이상은 울음과 미안함 그리고 미련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아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벅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