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질문, 나의 답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안아줄 그런 사람을 원하니까. 진짜만의 삶을 원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가짜라면, 나를 죽여주세요.
<지킬박사는 하이드 씨>
상당히 두려웠다. 네가 나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상당히 어려웠다. 내가 나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기에.
상당히 헷갈렸다. 한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툭툭 털어내며 곱씹어야 했기에.
너와 새벽에 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꽤 많은 것들을 털어놓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그런 나름은 깊고 어두운 이야기들. 나의 내면의 이야기들.
너는 항상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그 누구에게도 먼저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가면 뒤의 모습을 너에겐
자유로이 벗고 상처를,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릿광대. 내가 한 때 가장 좋아했던 가면이자,
가장 애용했던 가면.
나는 사람들이 나를 친근하게 바라보았으면 했다.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고 내가 상처를 받더라도,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처를 준 사람이 몰랐으면 했다.
그저 희미한 미소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버틸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고, 끊고,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 오는 사람은 막지 않되 가는 사람 역시 잡지 않는다. "
내 마음, 상처의 크기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날아가요.
나에게서 마음이 떠난 이들을 굳이 잡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자유이자,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자들, 고민을 말하려는 자들, 도움을 얻으려 하는 자들을 막지 않았다.
그것 역시 그들의 자유이자, 선택이고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러나 너와의 관계에서는 달랐던 것 같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가끔은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을 걷는 느낌.
그래서 멈칫하기도, 계속해서 헤매다 뒤로 또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신비로우면서도 약간은 어려운 그런 길이었다.
그래서였나보다. 넌 항상 내 인생, 선택 속에서 예외가 되어버렸다.
기존의 규칙들은 싹 다 사라지고, 깨지고, 답을 놓치게 되어버렸다.
웃기게도 네 앞에만 서면 모든 게 백지상태로 돌아가버렸다.
단 한 번도 결정 장애가 없던 나인데, 네 앞에서 나는 항상 멍청하게 굴었다. 고민을 너무 오래 하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답이란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의 선택에 따라 상당히 많은 것이 바뀌어버리는 그런 관계. 그렇기에 더더욱 놓치기 싫었던 관계.
빙빙 돌고 돌아서 겨우 잡았다 싶으면 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런 불안감과
무수히 많은 것들을 나누고, 기대고, 지쳤다 싶으면 먼저 다가와주는, 그런 고마움과
계속해서 눈에 아른거리고, 곁에 있고 싶은, 지켜주고 싶은, 보고 싶은, 그런 사랑함이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내가 너에게 표출하는 것들이 너무 급박하게 많아졌던 것 같다.
받지 않을걸 알면서 계속 마음을 주는 것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멍청한 오답만을 걸어가는 나의 선택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흔들거렸고
그로 인해 네가 스스로에게 회의감을 느끼고 고민을 해야 했기에 미안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견뎌야 할 공허함을 너에게서 완벽하게 해결되기를 원했기에.
가면을 한번 내려놓은 후, 나를 견딘 네 모습을 보고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기에.
미안해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나는 왜 네가 미안한지 잘 모르겠다.
너는 내가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생각을 되돌아보게 해주었기에.
너는 나를 떠나지 않았기에.
내 마지막 약속이자 네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그만 미안해해도 된다.
"절대 내가 먼저 당신을 떠나진 않을게요. 당신이 먼저 내가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
- 지금 나만 보고 있나요? 앞으로도 계속 나만 볼 수 있어요?
- 나에 대해 다 알고도...
내 전쟁 같은 꿈속을 다 보고도...
당신이 날 견딜 수 있다면... 당신이 날 버리지 않는다면
절대 내가 먼저 당신을 떠나진 않을게요.
<지킬박사는 하이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