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0일 금요일
누구요. 공격적인 목소리. 저예요, 할머니. 아가씨는 누구요. 그녀는 뒤죽박죽이 된 그녀의 기억 속 서랍을 한참을 뒤진 후에야 나를 알아보았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누가 알려준 거야. 고모가 알려줬어요.
시장에서 오천원에 샀을 것 같은 바나나 한손과 나무로 만든 수납함에 붙어 있는 단팥빵 세 개. 저걸 드시기는 할까.
그녀는 약에 취해 흐린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익숙했던 존재들은 낯선 이가 되어 그녀를 맞이한다.
대문을 잠갔나. 대문, 대문은 잠갔나. 네, 대문은 잠겨 있어요. 노크 소리. 환자 분, 열 좀 잴게요. 당신은 누구요. 그건 뭐야.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 간호사예요. 온도계가 그녀와 가까워진다. 초점을 맞추려 애쓰는 눈동자와 신경들의 움직임. 보호자 분, 열 시에 호흡제 투입해 주세요. 굵은 초록색 주사기가 내 손 위로 떨어진다.
그녀는 뼈마디와 혈관이 굵게 튀어나온 창백한 몸을 일으킨다. 어디 가시게요. 화장실. 그녀는 호흡기를 스스로 떼어낸다. 숨이 넘어 가는 듯한 소리. 그 소리는 그녀를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까지 부축하고 다시 침대에 눕혀 호흡기를 연결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녀는 자기 기억이 보관 된 서랍을 닫은 후 잠자리에 든다. 언제 순서가 바뀌거나 사라질지 모른다.
병원에서 나오자 샤워기의 온수를 적당한 온도를 맞췄을 때처럼 기분 좋게 따뜻한 빗방울이 어두운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한테 가서 더 있다가 집에 가자고 해. 왜요 할머니. 너희가 가고 나면 할아버지가 나를 때린다. 투명하고 혐오스러운 초록색 소주병들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규칙적이고 튼튼하게 쌓여있다. 나는 전기로 불빛이 들어오면 난방이 되는 장식품을 키자고 그녀에게 조른다. 그러나 그녀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면 할아버지에게 맞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고아 주제에 말이다. 저 고아년이 갓난아기인 내 손자를 데리고 새벽에 도망치려 했어. 그러나 할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엄마는 아기를 안고 바다로 자살하러 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깜빡이를 켜지 않은 차량이 갑자기 끼어든다. 욕지기가 솟았다.
정적, 허기, 증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슬픔. 잊어버리려면 무엇이든 입에 넣어야 한다. 친구 두 명이 동반자살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아침에 반장이 그랬다. 밥은 먹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주문한 콘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직원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자마자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억지로 눌러 넣었다. 더운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은 순식간에 녹아 흘러 손이 찐득거렸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속이 메스껍다.
나는 승강기 앞에서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어 버렸다. 나는 원하지 않던 일이다.
축축한 대기의 냄새 속에는 젖은 풀에서 올라오는 비린내가 섞여 무겁게 내 위로 가라앉았다.
머리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닦을 필요는 없다. 사실, 소용이 없다. 그저 받아들인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죽은 애인의 장례가 치러진 장례식장이 있는 곳이었다. 병원에 붙어 있는 장례식장의 화장실에서 나는 가방끈으로 목을 매달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다.
그때도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