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연못 May 12. 2022

익숙하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22년 어버이날


엄마는 성당의 제대 앞 꽃꽂이를 했다.

사순시기, 부활절,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탄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버스를 타고 꽃시장에 다녀와 꽃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늦은 새벽까지 안방에서 무릎을 꿇은채 시들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꽃잎을 골라내고 이파리를 손질해 보기 좋은 구도로 만들기도 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잘라내고 줄기를 적당한 길이로 다듬었다. 불이 모두 꺼진 집에서는 오래되고 고장이 나서 제대로 닫히지 않아 살짝 열린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엄마가 피워놓은 향 냄새와 연기만이 살아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표시를 냈다.


때때로 나는 불 꺼진 성당에서 엄마가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꽃꽂이를 하는 뒷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감실의 불빛이 어둠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감실의 주위는 붉게 빛났으나 멀어져 갈수록 캄캄한 어둠이 엄마의 뒷모습과 내 주위를 감쌌다. 그 어둠 속에 몸을 맡기면 나를 떨게 하던 두려움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안아주고 있는 듯한 부드러운 평온함을 느꼈다. 나를 안아주는 그것은 조용히 나를 지켜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 꽃을 꽂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도 안아주고 지켜주는 것 같았다.


누구도 엄마에게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교통비나 꽃값, 재료비도 주지 않았지만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묵묵히 제대 앞의 꽃을 꽂았다. 사람들은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만나 도망을 갔으면서 양육비도 주지 않고 빚만 남기고 간 아빠를 욕하고 엄마와 나와 동생이 불쌍하다고 말하면서도 엄마에게 이혼녀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꽃을 다듬는 엄마의 모습을 오래 보아서였는지 나는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도 꽃을 좋아하게 됐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자연 속에서 피어난 수국을 제외하고-내가 어른이 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다가오는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주고 싶었다. 엄마와 동생이 살고 있는 곳-내가 전에 함께 살던 집-근처에 괜찮은 꽃집이 있으니 집에 가기 전에 들려 카네이션 세 송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동생에게 올리브 오일에 절인 토마토와 루꼴라를 넣은 냉파스타도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엄마 집에 가기 전날 방울토마토를 다듬고 데쳐서 껍질을 벗기고 올리브 오일, 후추, 레몬즙, 설탕을 넣어 절인 후 투명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파인 흰색 페플럼 블라우스, 일자 청바지, 굽이 낮은 크림색 구두를 신고 파스타 재료를 담은 빨간색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블라우스의 기장이 짧아서 불편했지만 엄마에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신경을 써서 차려입은 것이었다. 연휴라 그런지 택시를 잡는 것이 힘들었다. 15 정도를 길거리에 서서 기다린 후에야 겨우 택시를 잡을  있었다. 아이스박스를 내려놓고 좌석에 앉으니 땀이 흘러 등이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짙은 노란색 간판의 꽃집 앞에 도착하니 카네이션으로 만든 디퓨저, 화분 등의 여러 가지 상품이 많았다. 분홍색이나 빨간색의 카네이션도 예뻤지만 여름날 장터의 좌판에 놓여있는 살구에 햇빛이 내려왔을 때의 빛깔과 매우 흡사한 색의 카네이션이 마음에 들었다.


꽃을 싫어한다고, 꽃을 사는 게 가장 돈이 아깝다고 하던 엄마였다. 카네이션 세 송이를 엄마에게 내밀자 엄마는 꽃을 받아 들고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꽃다발의 포장지를 풀고 화병에 맞게 줄기를 다듬어 한 송이는 부엌과 욕실 사이의 성모상 앞에 두고 나머지 두 송이는 내가 그린 푸른 바닷가 숲 그림이 있는 거실 앞에 두었다. 동생과 엄마는 내가 만든 냉파스타를 먹으며 오일 소스와 토마토 절임이 상큼하고 면이 촉촉하고 탱탱해서 맛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나보다 훨씬 키가 컸다. 동생을 떠올릴 때면 동생의 형체는 튀어 오르는 물방울로 변한다. 물결 같은 녹음 속에 있는 폭포에 다가가면 피부에 가볍게 떨어지는 시원하고 투명한 물구슬 같은 아이.


엄마와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엄마는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사양하는데도 엄마는 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가져가서 두고두고 보라고 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유칼립투스와 카네이션 한 송이를 흰색 종이 포장지로 감싸고 옅은 밤색으로 반짝이는 리본으로 묶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유리 화병에 물을 받고 카네이션과 유칼립투스를 꽂아 거울이 달린 화장대에 올려 두었다. 책상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화장대에 놓여진 화병의 카네이션을 보고 있으니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것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엄마는 내가 익숙하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엄마를 사랑하지 않고 엄마를 익숙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도 나는 죽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