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여행기 모음집 - 미얀마
미얀마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열기구가 가득한 바간의 사진을 보게 된 이후였다. 열기구와 고대의 불탑들이 가득한 고도시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겠노라 다짐하고 4월 미얀마 양곤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4월에 바간에는 열기구가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출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게다가 미얀마에서 4월은 가장 더운 달이라고 한다. 비행기표는 환불할 수 없고, 별 수 없이 기대보다는 실망을 먼저 품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양곤에서도 야간 버스를 한참 타고 바간에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이었다. 바간까지 가는 동안 검색한 바에 따르면 5000여 개의 불탑이 있는 불교 건축의 보고인 바간의 명물은 바로 일출과 일몰이다. 불탑들 사이로 떠오르는 (혹은 가라앉는) 태양을 보는 것이 바로 바간을 가장 바간답게 감상하는 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수기(10월~3월)에는 일출과 일몰 시간에 열기구까지 하늘에 떠다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 한 명이 호텔까지 데려다준다고 한다. 얘기를 더 해보니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 일출 포인트에서 일출을 보고 그 후에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제시한 금액도 나쁘지 않아서 속는 셈 치고 그를 따라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그 드라이버의 집에 들러서 차도 한 잔 얻어먹고, 그를 따라서 일출을 보러 갔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일출은 그저 지평선과 해 그뿐이었다. 열기구도 없고 파고다도 없었다.
바간에서는 대중교통이 없다. 그래서 걸어 다니거나 E-bike를 타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섭씨 43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걷다가는 온몸에 화상을 입기 십상이라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었다. E-bike라 함은, 최고 속도가 40km/h로 정해져 있는 전기 스쿠터를 말한다. 호텔에서 E-bike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 대부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예약을 해 준다.
나에게 있어 바간의 명물은 바로 E-bike였다. 헬멧도 없이 선글라스 하나만 달랑 쓰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어 40km/h로 달리다 보면, 스스로가 무슨 할리데이비슨 드라이버라도 된 마냥 우쭐하게 되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미지의 무언가를 밝혀내러 떠나는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바간에서는 E-bike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렇지만 낮에는 너무 덥기 때문에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고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쉰다. E-bike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것은 동이 트기 전 새벽이나 해가 지기 전 초저녁이다. 다른 곳에서도 자주 쓰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바간 여행기를 찾아서 읽다보면 ‘일출 헌팅’ ‘일몰 헌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간에서 일출과 일몰을 적절한 장소에서 감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바간의 일출과 일몰은 수많은 파고다들과 함께 감상하는 게 제격인데, 비슷한 높이의 파고다들을 한 번에 조망하려면 파고다의 위에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얀마 정부에서는 관광객들이 파고다에 올라가 문화유산을 망가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전에 일출, 일몰 포인트로 인기 있던 파고다의 출입을 하나씩 금지시키고 있다. 구글에 검색해서 나온 지점은 이미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막혀 있는 파고다에 몰래 잠입하려 하다간 현지 경찰에게 제지받게 된다.
그렇기에 바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위치 정보를 알아내서, 적절한 시기에 그 장소에 정확히 있어야만 일출과 일몰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바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위치정보를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터넷 검색이지만 검색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정보가 최신 정보가 아니라면 이미 미얀마 정부가 한 발 앞선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머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현지인에게 정보를 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나는 처음에 검색을 통해 일몰 포인트를 찾아갔지만 실패하고 경찰에게 제지당했기에 나머지 두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둘째 날 아침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거리를 E-bike를 통해 달리다가 만난 미얀마 청년에게 일정 금액 돈을 주고 일출 포인트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몇 번의 흥정 끝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렇게 찾아간 일출 포인트는 나름 괜찮았다. 다른 여행자들도 이미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나름 남아 있는 포인트 중에서는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일출 자체가 숨 막힐 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노력 끝에 얻은 광경이라는 생각에 뿌듯함에 취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만난, 그리고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프랑스인 청년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일몰 포인트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정말 위도와 경도를 가르쳐 주어서 열심히 받아 적고, 해질녘 그 장소를 찾아갔다. 파고다 위에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여러 파고다와 가라앉는 해를 볼 수 있어 나름 괜찮은 일몰 포인트였다.
바간에서의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르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여행이 '게임'같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장비(E-bike)를 줄 테니 미션(일출, 일몰 헌팅)을 수행하는 형식이 영락없는 게임이다. 경쟁과 성취의 메커니즘에 지쳐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여행에 와서 목표와 성취의 게임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사뭇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는 조금의 게임성(性)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도, 때로는 여행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