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6일 칼럼 기고분)
[사례] 중학생 3학년 A군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다른 불량한 친구들과 함께 일진회를 조직하여 하급생이나 반 학생들에게 돈을 뺏고 빵셔틀을 시키며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몇몇 아이들을 지목하여 왕따 시키며 즐거워했다. 교사 B도 이러한 사실을 눈치챘지만 정도가 심하진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A군은 노점상을 하시던 엄마가 과로에 쓰러져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앓고 계신 것을 기화로 모든 악행을 접어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A군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신이 과거에 왕따 시켰던 동급생 C가 다른 일진회 친구들의 계속된 폭행에 못 이겨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집단 따돌림’에 대해서 법원은 ‘학교 또는 회사, 군대 등 집단에서 복수의 사람들이 한 명 또는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의도와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현상’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집단 따돌림을 비롯한 학교폭력 문제가 재조명받으면서, ‘무서운 아이들’, ‘교권추락’, ‘학부모의 과잉보호’, ‘교사의 체벌권 부활’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결국 실제 사례를 판단해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및 민사적 손해배상 이외에도 ‘교사나 학교의 민사적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①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교육활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시간 중에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 등의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교사나 학교(국공립의 경우에는 국가, 지자체 포함)의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배상책임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사나 학교가 당해 폭력 문제를 피해학생이나 그 학부모 등으로부터 상담받은 적이 있다면 배상책임의 범위는 더욱 커집니다. ② 그런 이유로,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환각, 대인공포증 등 정신병까지 얻었다면 그에 대해서도 교사나 학교가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③ 하지만, 피해학생이 자살까지 이르렀다면, 교사나 학교는 집단 따돌림 자체로 인한 손해는 별론으로 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해학생의 자살까지 예견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5다 16034 판결).
이제 ‘왜 A군을 포함한 일진회의 폭력이나 C군의 자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전적 범죄학에서는 세 가지 화두를 꺼냅니다. 한 가지는 ‘인간의 악성은 생래적인 것인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간은 이성으로 자신의 악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이 제대로 작동되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형벌을 부과해야 하는가’입니다.
이에 반해 현대 사회학자들은 ‘생래적 요인이나 이성적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환경이다’라고 보았는데, 그중 시초가 되는 인물로는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을 들 수 있습니다.
뒤르켐은 『전통사회의 연대의식은 산업화로 인하여 단편화, 세분화, 분업화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사회규범은 해체되고 사회적 통합이 약화되어 자살이나 범죄가 증가한다』며 ‘아노미(무규범)’이론을 제창한 바 있습니다. 즉, 아노미 이론에 따르면 ‘① C군은 규제와 억압의 상태에서 무력감을 느껴 숙명론적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② A군은 가치혼란의 아노미 상태에서 악행에 이르렀으나 결국 모친과의 연대를 토대로 혼란을 바로 잡았다. 하지만, 최근 C군의 자살로 인해 위기에 놓여있다.’고 볼 것입니다.
무한경쟁, 실적주의를 만능으로 보고 ‘약자에 대한 억압’과 ‘강자에 대한 복종’이 팽배한 21세기에서도 이와 같은 이론은 경청할 만합니다.
미국 해병대의 코드레드(일종의 얼차려)를 다룬 법정영화 ‘어퓨굿맨’을 보면, 배심원단은 재판 과정을 통해 동료가 심장질환이 있는지도 모르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코드레드를 단행했다가 동료를 질식사로 죽게 한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의 범행 중에서, 살인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평결하지만 직무유기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일병이 상병에게 ‘우리가 뭘 잘못했죠?’라고 반박하여 묻자, 도슨 상병이 대답합니다.
‘죄가 있는 게 맞아. 우린 약자를 보호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