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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초승달과 별

(2011년 3월 4일 칼럼 기고분)

by 임상구 변호사

서기 610년, 무하마드는 메카 외곽의 어느 동굴에서 장기간 명상을 거듭하고 있던 중 천사장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습니다. ‘알라의 이름으로 읽으라. 그분이 인간을 창조했느니라’ 그날 밤 무하마드가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동굴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었답니다.


이후로 이슬람권에서 ‘초승달과 별’은 ‘진리의 시작’을 의미하게 되었고, 1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터키, 튀니지, 리비아, 말레이시아 등의 국기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辛卯년 새해 벽두부터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 이슬람 지역의 반정부 운동 소식이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辛卯의 辛은 칼(金)이요, 卯는 풀(木)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반목하는 형국이어서 금년은 심상치 않은 한 해가 되리라는 어느 역학자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나 봅니다.


민초들이 모이면 칼도 무뎌지는 법.

오늘은 재스민 혁명, 시민혁명, 반정부 운동, 민주화운동 등 다양하게 불리는 중동의 움직임에 대해 법학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민혁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을 비롯하여, 가까이는 우리나라의 19세기 동학혁명, 1960년 4.19 혁명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3세기 영국 마그나카르타엔 ‘저항권’을 최초로 명문화하였고, 18세기 미국 독립선언에서는 ‘천부적 인권을 훼손한 정부를 폐지하고 신정부를 세울 권리’를 국민의 권리로 인정하는가 하면, 프랑스 인권선언에서도 ‘압제에 저항하는 권리’를 규정하였습니다. 국민주권 사상이 전 세계적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정신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압제에 항거하는 국민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법학에서는 그 목적이나 방법 등에 따라 시민 불복종 운동, 저항권, 혁명 등의 전문용어로 세분화하고 있으며, 국민의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지배계급 내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쿠데타’와는 구별 짓고 있습니다.


‘시민 불복종’의 예로 간디의 민족주의 비폭력 저항운동과 같이 비폭력성에 중점을 두고 이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미국에서 출발한 개념인 만큼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의 법이나 정부의 개별적인 명령이나 정책 등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거나 항변하는 행위’를 뜻하며, 미국 흑인들의 시민권 쟁취운동이나 베트남전 당시 반전평화운동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항권’은 운동이나 혁명 등 개별적인 사건 자체에 중점을 두지 않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국민의 권리’ 임을 강조한 개념인 데다, 넓은 의미로 파악할 경우 ‘압제에 반항하는 모든 합법적·비합적 저항 행위’를 총칭하기 때문에 혁명까지도 포함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현생 인류가 최선의 국가체계로 인정하고 있는 ‘입헌민주주의’가 확립된 현대국가에서는 다시 전제주의(절대주의, 독재주의)로의 복귀를 꾀하려는 혁명이나 저항은 인정될 수 없으므로, 저항권의 개념은 ‘현존 민주주의 법질서의 수호 또는 재건을 위한 비상적 헌법 보호수단’의 의미로 제한하여 이해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최근 중동의 움직임에 대해 시민혁명․시민 불복종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에 법학계 통설적 입장에서 용어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중동’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이슬람교, 아랍왕자, 오일머니, 차도르, 일부다처제, 중동전쟁, 자하드, 팔레스타인, 테러 등등이 떠오르시겠지요. 저는 중동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과거 이모부님이 중동 공사현장에 가셔서 이종사촌 동생들에게 보냈던 편지, 특히 그 봉투에 붙여져 있던 ‘우표’가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두건을 쓰고 수염을 기른 이국적인 아랍인의 모습, 활발하게 움직이는 건설현장의 모습, 낙타와 야자수가 있는 오아시스...


세계경제와 정치에 타격을 주면서까지 이루어진 중동의 시민혁명 이후 새롭게 찾아오는 세상은 어떨지요.


구관이 명관이란 얘기까지 돌며 혼돈의 시간이 길어질지,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는지, 자유가 부담스러워 다시 독재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우표 속 그림에도 초승달과 별이 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진리의 시작을 고하는 중동에 알라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초승달별.bmp (뉴시스) 리비아 소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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