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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18. 2017

009 생명권과 사형제도 존폐 논의

(2010년 03월 05일 칼럼 기고분)



“죄인 조광조는 어명을 받들라.” 

전남 화순에서 유배생활 중이었던 조광조가 ‘유배 한 달만에 어떤 어명이 있을까’하여 버선발로 나갑니다. 

“죄인 조광조는 사사(賜死)하라는 어명이오” 

왠 날벼락이냐며 조광조가 묻습니다. 

“과연 임금님의 뜻이오?”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꿨던 개혁파 조광조는 결국 훈구세력에 의해 사약을 받고 목숨을 거둡니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장면도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조광조의 사사 장면 또한 사극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약을 받는 것은 그나마 신분이 귀할 때의 처형 방법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그 밖에도 교수형·참수형·능지처사 등의 사형집행방법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백성이나 관료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 또한 임금의 마음이었습니다. 일개 백성들에게, 요즘 얘기하는 ‘생명권’ ‘행복추구권’은 상상도 못 할 얘기였었지요. 

이역만리 백인들의 나라에서도 ‘왕권신수설’이라 하여 ‘임금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포괄적으로 위임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무소불위하다’는 이론을 근거로 각 나라의 임금들이 절대왕권을 행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면서 일반 백성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임금님도 백성인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때나 임금님이지 전쟁 나면 제일 먼저 도망치는 임금님은 소용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국가의 주권은 임금이나 대통령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있다’는 소위 ‘국민주권론’입니다. 


국민주권론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의 주권 이론이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민주권론에서 조금 더 지나치면 ‘무정부주의(정부도 필요 없다, 개인들이 알아서 살면 된다)’로 갈 수도 있는데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극단적 모습이라 할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국민들이 국가를 만들고 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국가와 그 주인인 국민 간에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모종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는데, 이를 ‘사회계약설’이라고 합니다. 


갑 : 홍 길 동
을 : 대한민국

제1조 갑은 을의 주인이다. 갑은 먹고살기 바빠서 나라 일에 대해서 매번 감나라 대추나라 할 수 없으니, 갑을 대신할 공무원이나 정치인들로 하여금 나라 일을 도모한다. 그리하여 갑은 을에게 선거할 때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국민투표, 주민투표 등을 통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제2조 갑은 을에게 세금도 내고 때에 따라 국방의 의무도 이행한다.

제3조 을은 갑의 생명과 재산을 적국이나 내부의 침해로부터 철통같이 지켜 준다. 

제4조 을이 힘이 세다고 주인인 갑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되고, 안전보장·공공복리 등의 목적으로 갑의 권리가 일부 제한되는 것은 수용한다. 그 경우에도 갑의 권리 중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제5조 을의 주인은 갑을 포함한 전체 국민이므로, 주인들 간의 충돌이 있을 때 을은 중간자적 입장에서 정의와 형평에 따라 일처리를 한다.


여기서 오늘의 주제 ‘사형제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형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아무리 죄인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주인인 내 목을 쳐?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은 죄라고 하면서도, 나라가 날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야?”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특히,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생명권의 본질(목숨)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나냐’는 것이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60명의 사형수가 있는데, 10년이 넘도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형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 판단이 있었습니다. 


지난 1996년 사형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 재판관 7인의 압도적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한 바 있었는데(헌법재판소 1996. 11. 28. 자 95헌바1 결정), 이번엔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졌었습니다. 결국 재판관 5인이 합헌의견 나머지 4인이 위헌 의견을 내, 과거보단 합헌의견이 줄어들긴 했지만 결론 자체는 합헌으로 동일했습니다(헌법재판소 2010. 2. 25.자 2008헌가23 결정). 


이번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몇몇 종교단체나 인권단체는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14년 전의 결정보단 진일보한 결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들도 ‘사형에 대한 오·남용을 불식하고 과잉형벌의 지적을 면할 수 있도록, 사형 대상 범죄를 축소하거나 문제 되는 법률 조항을 폐지하여야 한다’라든지, ‘반인륜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극악범죄의 경우로 한정하고, 종국적으로 국민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입법적으로 개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피해자나 그 유족을 만나면 사형존치론자가 되고, 사형수를 만나면 사형폐지론자가 된다고 했던가요. 헌법재판소가 비록 사형 존치론자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사형이란 제도는 응보적 목적뿐 아니라 사실상 죄인을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시켜 사회를 보호한다는 목적도 있으므로 무기징역이나 종신형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형폐지론자들의 말도 경청해 볼 만 합니다. 




헌법재판소 2010. 2. 25.자 2008헌가23 결정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는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95헌바1 결정 참조). 따라서 인간의 생명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국가는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정당한 사유 없이 생명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입법 등을 하여서는 아니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사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일반국민의 생명권이 박탈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입법 등을 함으로써 일반국민의 생명권을 최대한 보호할 의무가 있다. 사형은 이러한 생명권에 대한 박탈을 의미하므로, 만약 그것이 형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우리 헌법의 해석상 허용될 수 없는 위헌적인 형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헌법재판소 95헌바1 결정 참조). 

그런데 사형제도가 위헌인지 여부의 문제와 형사정책적인 고려 등에 의하여 사형제도를 법률상 존치시킬 것인지 또는 폐지할 것인지의 문제는 서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즉, 사형제도가 위헌인지 여부의 문제는 성문 헌법을 비롯한 헌법의 법원(法源)을 토대로 헌법규범의 내용을 밝혀 사형제도가 그러한 헌법규범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에 최종적인 결정권한이 있는 반면, 사형제도를 법률상 존치시킬 것인지 또는 폐지할 것인지의 문제는 사형제도의 존치가 필요하거나 유용한지 또는 바람직한지에 관한 평가를 통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적 문제이지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대상은 아니라 할 것이다. 유럽의 선진 각국을 비롯하여 사형제도를 폐지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헌법해석을 통한 헌법재판기관의 위헌결정이 아닌 헌법개정이나 입법을 통하여 사형제도의 폐지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위와 같은 구분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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