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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3. 2017

104 미수범

(2014년 3월 31일 칼럼 기고분)


[사례] 갑은 약 2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을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갑은 어떤 죄로 어떻게 처벌될까요?


지난 시간 위와 같은 동일한 사례를 기초로 범죄를 개별화하는 구성요건과 범죄의 고의의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기수와 미수를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즉,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해 어느 경우에 살인미수죄를 적용하고 어느 경우에는 협박죄의 기수를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의의 확정에서 출발     


미수범의 처벌기준인 실행의 착수 행위는 ‘행위자의 주관적인 범죄계획에 비추어 범죄 의사의 분명한 표현이라 볼 수 있는 행위가 보호법익에 대한 직접적 위험을 발생시켰을 때 인정된다’는 절충설이 통설적인 입장입니다. 


○ 갑이 을을 협박할 의사로 칼을 겨누고 있을 뿐이며 당시의 언행도 ‘꼼짝 마라.’는 것이었고 더 이상의 행위로 나가지 않았다면 칼을 든 행위와 협박의 언사로 을의 심리적 공포 상태를 초래한 법익침해의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협박의 기수가 됩니다.  

○ 그런데 여기서 갑이 을에게 접근하여 칼을 휘두른 행위가 추가되었다면 신체적 훼손을 야기할 위험이 구체화되었으므로 갑은 상해죄 또는 살인죄의 미수범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 나아가 갑이 을에게 접근하여 칼로 찔렀고 그 결과 사망하였다면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으니 살인죄 또는 상해치사가 될 수도 있는데, 이때에는 칼로 찌른 부위, 회수 등을 토대로 당시의 범의가 살인의 고의였는지 상해의 고의였는지를 판가름합니다. 예를 들어 목, 심장 등을 겨냥했거나 수회 찔렀다면 상해의 고의라기보다는 살인의 고의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범죄는 객관적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관적인 범의(범죄의 고의)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범인이 자신은 살인의 고의였다고 자백하는데 실제로 상해의 결과만이 발생했다면 살인미수로 의율 되지만, 이와 달리 살인의 고의인지 상해의 고의인지 애매한데 범인이 상해의 고의만 인정하고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고 있을 때에는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를 입증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 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 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풀어 얘기하자면 칼로 찌른 부위, 당시의 고의를 추단케 하는 언행, 회수 등 범의를 인정할 수 있는 간접사실(연결고리)을 종합하여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 그 행위자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당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8. 1. 18. 선고 2007도8781 판결 등 참조). 즉, 상해의 고의가 칼을 휘두른 주된 고의였으나 자칫 상대방이 자신의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휘둘렀다면 미필적 살인의 고의로 의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행의 착수와 범죄의 미완성 (장애미수/중지미수/불능미수/불능범)


미수란 의도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칼로 심장을 찔렀는데 을이 옷 속에 보호구를 착용하여 사망하지 않은 경우를 장애미수라고 하며(임의적 감경), 살인의 고의로 복부를 찔렀는데 곧바로 119를 불러 구조하여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였을 경우 중지미수라고 합니다(필요적 감면). 


한편 죽이려고 음료수에 독약을 타 먹였는데 그 독약이 치사량에 현저히 미달하여 몇 시간 잠자다가 깨어났을 뿐이라면 이를 불능미수라고 하고 있습니다(임의적 감면). 이때에는 의도한 악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실행의 착수를 통해 위험성이 현실화되었으므로 미수범으로 처벌하되, 형량을 정함에 있어 형법 규정에 따라 감면, 감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갑이 자신이 가진 무기가 실제 칼이나 총인 줄 알고 을을 찌르거나 을을 향해 격발 하였는데 장난감 칼(예컨대 찌르면 칼날이 손잡이 쪽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나 장난감 총이어서 중대한 신체상 훼손을 가하지 못했고 규범적 차원의 위험성도 아주 미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다만 범죄행위의 성질상 결과 발생 또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없어 추상적인 위험조차 없는 불능범의 경우 불가벌입니다(다만 장난감 칼, 총 사례는 학설에 따라 불능미수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제25조 (미수범) ①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
② 미수범의 형은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 

제26조 (중지범) 범인이 자의로 실행에 착수한 행위를 중지하거나 그 행위로 인한 결과의 발생을 방지한 때에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제27조 (불능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28조 (음모, 예비) 범죄의 음모 또는 예비행위가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제29조 (미수범의 처벌) 미수범을 처벌할 죄는 각 본조에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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