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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5. 2017

123 ‘도가니’에서 ‘오아시스’까지

(2012년 11월 26일 칼럼 기고분)

[표지 : 영화 <오아시스> 스틸 컷]



조두순 법


조두순 사건 이후 그리고 김길태 사건을 즈음한 2010. 4. 15. 성폭력 관련 법령(성폭법, 아청법)이 전면 재정비되었습니다. ①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유형별로 구분하여 처벌을 강화하는가 하면,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를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하도록 하고, ②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을 사실상 원천 봉쇄하며, ③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성인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 공개․우편 고지하도록 하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제도가 강화되었습니다. 기타 반의사불벌죄 축소, 진술 녹화 제도와 증거보전의 특례, 신뢰관계있는 자의 동석제도 도입 등이 주요 개정내용입니다(주로 아동 성폭행 관련 사항).  



도가니 법


조두순, 김길태의 악몽이 사라지기도 전에, 2011년 청각장애인학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도가니’가 또다시 성폭력범 엄단의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너도나도 속칭 ‘도가니법’을 발의했습니다(주로 장애인 성폭행 관련 사항). 


당시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규율하고 있는 성폭력법 제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는데, 그 적용범위는 원칙적으로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이어야 했으므로 이에 대한 입증이 부족한 경우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습니다(대법원 2003. 10. 24. 선고 2003도5322 판결 - 정신지체 2~3급, 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4도1449 판결 - 정신지체 1급). 


추후 대법원은 위 법조적용의 요건을 넓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까지 확대하였습니다. 나아가 2011. 11. 17. 개정법에서는 13세 미만 성폭행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범죄를 확대․유형화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13세 미성년자 및 장애인에 대한 강간 등 중대 성폭행의 경우 공소시효를 아예 배제시키기로 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장애인을 폭력적 방법으로 강간한 경우는 물론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현저히 항거곤란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에도 최소 징역 3년 6개월이어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①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폭행이나 협박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 구강·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는 행위

2. 성기·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

③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8조(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⑤ 위계(僞計) 또는 위력(威力)으로써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간음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⑥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을 추행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⑦ 장애인의 보호, 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의 장 또는 종사자가 보호, 감독의 대상인 장애인에 대하여 제1항부터 제6항까지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오아시스 : 성폭력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 설정


그러던 지난 2012. 10. 26. 울산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건물주로부터 정신지체 3급 딸을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오히려 그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건물 임차인 남자 2명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는데(울산지방법원 2012. 10. 26. 선고 2012고합65 판결), 최근 이 판결이 여성․장애인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는 등 또다시 문제 되고 있습니다. 


일단 위 사건은 도가니법 적용 전의 범죄사실을 다룬 것이어서 종전의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장문의 판결문으로 조심스럽게 답변하였는데, 그 취지는 이렇습니다. 


《장애인의 경우 그 장애 양상이 너무나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지마비, 의식불명 장애인과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같이 취급할 수 없다. 특히 미성년자 성보호의 이념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행위’는 동의 여부 불문하고 처벌하고 있는데, ‘성년 장애인과의 동의에 의한 성교’를 이와 똑같이 규율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장애인과의 성관계가 무조건 처벌된다면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은 그 처벌이 두려워 성관계를 맺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성인인 장애인의 성적 경험을 누릴 기회 자체가 박탈될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성관계가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경우에만 그 상대방을 처벌해야 하는데, 제반 사정을 감안하면 피고인들의 경우 피해자의 유효하고 자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결문만 놓고는 저로서도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개정된 도가니법이 적용되었다면 성폭력법 제6조 제5항의 ‘위력에 의한 장애인 간음죄’로 의율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성인 지적 장애인이 있는 부모의 경우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몸은 성인이어서 욕구를 가질 수 있는데 정신연령은 미성년이어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는군요.


아무튼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니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년 개봉)’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사회 부적응자 종두(설경구 분)가 그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 분)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장애인 성폭행으로 입건되어 실형을 살게 되었고, 공주는 종두가 출소하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판례에 따르자면 공주와 종두의 자유로운 성관계는 보호되어야 하되, 공주는 일반 애정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이별, 배신 등의 다양한 위험을 스스로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 외적으로 종두가 공주의 취약한 장애상태를 이용하여 사랑하는 척 접근하여 성적 노리개로 삼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한 것이라면 최소한 위계․위력 간음죄 등에 따라 처벌되어야 할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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