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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5. 2017

122 엄마가 지켜줄게

(2009년 11월 13일 칼럼 기고분)

2009년 가을 전 세계가 조류독감(AI), 돼지독감(SI)에 뒤이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당혹해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국에서는 신종플루만큼이나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조두순 사건’으로 불리는 아동 성폭행범죄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얼마나 여론이 뜨거웠는지 인터넷에는 ‘피고인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명목으로 알콜중독자 조두순의 팬카페가 등장하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조두순에게 12년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너무 낮은 처벌이라며 검찰·법원·변호인까지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가세하여 법을 정비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대통령도 나서서 '성폭행범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아무튼 위 사건은 대다수 국민들의 머릿속에 '기억하기도 싫은 못된 바이러스'를 심어놓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신종플루 공포에 버금가는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극화한 영화 <소원>



예방 백신


아동 성폭행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로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입니다.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 재범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나, ‘중벌이나 신상공개, 전자팔찌 등으로 법의 엄중함을 보여 범죄자로 하여금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예방․특별예방차원에서 논의되고 있고, 잠재적 피해자를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사회단체, 보육시설, 부모 등이 연계하여 상시 감시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엄마가 날 지켜주지 않았잖아


잠시 시간을 거슬러 1998년도에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엄마 A는 자신의 딸 B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묻자 "고추가 가렵고 아프다. 아빠 선생님이 고추를 만졌다."고 얘기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가 날 지켜주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엄마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이에 엄마는 유치원 원장을 미성년자성추행등으로 고소하였지만 검찰에서는 어린 나이의 B가 사건의 핵심적인 내용 이외에 추행의 일시, 장소, 횟수 및 정황 등에 관하여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B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하였습니다(서울 서부지검 1998년형제37757호).


하지만 엄마는 유치원과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 승소하였고(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2다10585 판결),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받았습니다(헌법재판소 2002. 6. 27. 선고 2000헌마645 결정).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난 2003년 형사재판이 있었는데, 법원은 엄마에게 피고인이 범행부인하므로 증거법칙상 '딸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해야 한'며 출석을 권유했지만, 엄마는 딸아이가 언대에서 또다시 그일을 말해야 한다면 그동안의 정신과 치료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증인 출석을 거부하였습니다(사법절차에서의 제2차 피해). 결국 형사재판에서는 적법하게 인정되는 피해진술이 현출되지 않아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법원은 아동의 직접적인 법정 출석이 또 다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동전문 상담원과 성추행 피해아동의 인터뷰 진술녹화 비디오테이프’의 증거력을 인정하여 위 진술녹화테이프가 있다면 아동전문가의 법정진술 이외에 별도로 아동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가 하면(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도3161 판결 등), 아동이 법정에서 진술할 경우 그 신빙성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5도9561 판결 등).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아이가 이러한 피해를 당하게 된 경우 엄마들이 챙겨야 할 것은 ‘아이들의 진단·치료’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피해 아동이 망각했거나 망각하고 싶어 하는 ‘사건 초기의 생생한 진술(직접증거)’을 확보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아동전문가의 감정소견(간접증거, 정황증거)’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엄마가 꼭 지켜줄게


위 사건을 소개하여 드린 이유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 있습니다.


자칫 피해아동의 엄마들은 가해자를 응징하여야 한다는 복수감정에 휩싸여, 아이의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터 잡아 지목된 용의자를 진범으로 단정하였다가 오히려 역공격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진범을 찾아 처벌받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가정 자체가 피폐화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위 사건에서 엄마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도 불구하고 딸과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냉정하게 대응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엄마들의 각오는 매서울 것입니다. 생각 같아선 법이고 뭐고 필요없을 수도 있습니다.


‘신종플루든 사이코 든 간에 엄마가 꼭 지켜줄게’






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도3161 판결【미성년자의제강제추행치상】

수사기관이 아닌 사인(私人)이 피고인 아닌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는 형사소송법 제311조, 제312조의 규정 이외에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와 다를 바 없으므로, 피고인이 그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 진술 부분에 대하여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하여는, 첫째 비디오테이프가 원본이거나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에는 복사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일 것, 둘째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에 따라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비디오테이프에 녹음된 각자의 진술내용이 자신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바, 비디오테이프는 촬영대상의 상황과 피촬영자의 동태 및 대화가 녹화된 것으로서, 녹음테이프와는 달리 피촬영자의 동태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것이 전제된다면, 비디오테이프에 촬영, 녹음된 내용을 재생기에 의해 시청을 마친 원진술자가 비디오테이프의 피촬영자의 모습과 음성을 확인하고 자신과 동일인이라고 진술한 것은 비디오테이프에 녹음된 진술내용이 자신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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