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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5. 2017

124  DNA 수사, 현대판 솔로몬의 재판인가?

(2010년 03월 12일 칼럼 기고분)

얼마 전 성폭행(특수강간)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A는 경찰관이 수사접견 왔다는 교도관의 말을 듣고 놀랍니다. 

‘무슨 일이지? 지난 사건으로 부모님이 가산을 털어 피해자와 합의까지 했어도 결국 실형을 살고 있는데, 경찰관이 왜 또 날 부르는 거야?’ 

접견실안에서 경찰관은 A에게 ‘난 네가 2년전 겨울에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또 다른 성폭행 사건을 묻고 있습니다. 경찰관의 말을 들은 A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란 표정을 짓습니다. 


수사접견온 이유는 이랬습니다. 

2년 전 발생해 최근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던 여대생 성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경찰은 사건현장에 남아있던 가해자의 체모나 정액을 확보해 유전자검사를 했었는데, 그때에는 검사결과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용의자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A가 얼마 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성폭행사건으로 수사 받는 과정에서 유전자검사를 받았었는데, 그 검사결과가 경찰정보망에 올라가면서 2년 전 여대생 성폭행사건의 범인이 바로 A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A는 경찰관에게 대답합니다. ‘전 DNA가 뭔지도 모르고,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A는 DNA로 현장존재증명. 범행증명을 하고 있는 경찰관에게 그에 대응할 만한 ‘과학적’ 알리바이를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솔로몬 ?


성범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밝히기를 꺼려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소위 암수(暗數-숨어있는 범죄의 수)가 많고, 피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성범죄보도가 끊이지 않고 매스컴을 도배할 정도로 성범죄의 암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최근 김길태 사건은 경찰의 초동수사미진, 물탱크 안에서의 시신 발견, 양부모의 등장 및 자수권유, 관상학자와 범죄학자들의 언론보도, 체포이후 이례적인 얼굴공개 등 범죄영화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선정성을 보였는데, 이 사건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범인의 DNA였습니다. 숨진 이양의 집에서 김길태의 지문과 발자국이 나왔고, 이양의 몸에서 김길태의 DNA가 검출된 것이 증거였던 것이지요. 


세포속의 핵에는 염색체가 있는데, 이 염색체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중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체 DNA의 약 3~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DNA구조를 가진 사람이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확률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범행증거의 결정적 단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DNA 분석은 과학수사의 혁명이었고, 이로써 미국에서는 무고하게 수감되었던 집행수가 DNA 분석결과 진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19년만에 풀려나는 일(제니퍼 사건)도 있었습니다. 



DNA법 시행과 점검


지난 1. 25. ‘디엔에이(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인권침해 등의 논란 속에서 제정되어 2010. 7. 26.부터 시행예정에 있습니다. 주요내용은 ① 살인, 아동·청소년 상대 성폭력범죄, 강간·추행, 강도, 방화, 약취·유인, 상습폭력, 조직폭력, 마약, 특수절도 등 11개 유형의 강력범죄 등에 한정하되, ② 수사기관은 위 범죄로 판결이 확정된 사람(검찰)이나 구속 피의자(경찰), 범죄현장 유류물(경찰) 등에서 DNA를 채취하여 통합·관리하면서 범죄발생시 조속한 범인 검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③ 그동안 수사기관이 근거규정 없이 임의수사나 강제수사의 일환으로 DNA채취를 해오던 것을 경과규정을 통하여 법시행전의 것까지 유효성을 인정하였고, ④ DNA정보를 은닉·손상·변조하거나, 함부로 누설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DNA분석은 첨단생체과학의 꽃으로 완전무결한 것일까요? 

우선 DNA 오염·조작으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될 위험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7가지의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DNA 수사 결과에 따라 11살 소녀를 강간했다고 지목된 사람이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진범이 밝혀지는 사례도 있었고(벨라미 사건), 미국의 DNA 감식 기관 통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5년간 3100건의 DNA 감식을 시행한 결과 이 중 26건이 감식 오류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유전자가 오염되거나 극히 소량일 경우 문제되는 것으로 적정량의 분석물이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오류는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습니다. 개인의 생체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개인 정보를 공권력이 관리한다는 발상자체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손가락 지문 정보에 비하여, 혈액·타액·모발 등의 DNA 시료 당사자가 사건 현장에 없더라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 조작의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지문정보를 도용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DNA 정보이용법의 시행을 계기로 엄격하고 공정한 관리 및 수사를 통해 흉악범 검거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수사기관이나 법원 또한 DNA를 맹신하여 오판하는 사례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7도1950 판결【강도치상·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등)·특수강도】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한 것은 그것이 실체적 진실발견에 적합하기 때문이지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인용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증거판단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사실심 법관은 사실인정에 있어 공판절차에서 획득된 인식과 조사된 증거를 남김없이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법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 특히, 유전자검사나 혈액형검사 등 과학적 증거방법은 그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그 추론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의 가능성이 전무하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관이 사실인정을 함에 있어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지므로, 비록 사실의 인정이 사실심의 전권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함부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DNA분석을 통한 유전자검사 결과는, 충분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지닌 감정인이 적절하게 관리·보존된 감정자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확립된 표준적인 검사기법을 활용하여 감정을 실행하고 그 결과의 분석이 적정한 절차를 통하여 수행되었음이 인정되는 이상 높은 신뢰성을 지닌다 할 것이고, 특히 유전자형이 다르면 동일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유전자감정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전문지식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유전자형이 범인의 그것과 상이하다는 감정결과는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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