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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5. 2017

125 자백 보강 법칙 -'죄수의 딜레마' 다시 읽기

(2013년 7월 8일 칼럼 기고분)


딜레마(dilemma)는 그리스어의 di(두 번)와 lemma(제안 ·명제)의 합성어로 ‘두 가지 명제’란 뜻이고, 일반적으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햄릿이 ‘죽느냐 샤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독백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딜레마인 것이지요. 딜레마는 여러 각도로 응용되는데, 단순히 개인 한 명이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놓고 어떤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집단(단체, 국가, 진영 등)의 정책결정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경제냐 환경이냐, 효율이냐 형평이냐, 규제냐 방임이냐, 공격이냐 협상이냐 하는 것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 가지 딜레마 이론 중 최근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에서도 소개되었던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어떤 형사가 두 명의 공범자 A, B를 입건했다. 두 명이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 같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물론 A, B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형사는 생각한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증거재판주의). 사람의 진술도 증거이며, 특히 범인의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 그런데, A, B가 순순히 자백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백할 수 있는 미끼를 제공하면 자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형사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범인의 자백은 그것이 범인에게 불리한 유일의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자백의 보강 법칙을 응용하여 두 명의 공범자가 서로를 불신하여 자백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이에 형사는 각각의 범인을 서로 연락할 수 없도록 독방에 격리시켜 놓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려 줬다. 

"둘 다 자백하는 경우에는 각각 5년 형을, 둘 다 부인하면 각각 1년 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부인했는데도 다른 한 명이 자백하면 당신은 징역 10년을 살게 되고 자백한 사람은 특전(또는 자백의 보강 법칙 적용)으로 풀려난다. 물론 두 명 중 당신만이 자백하면 당신은 석방되고 다른 사람은 징역 10년을 살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에 충실하게 해석한다면, 위 사례에서 A, B 모두 부인하면 각각 1년 형씩 살게 되므로 총합으로 보면 최선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부인한다고 하여 1년형을 살 보장이 없는데 그 이유는 공범이 저 혼자 석방되겠다고 자백하고 나오면 정작 자신은 10년형을 얻어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선택에 따른 게임 상황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A, B는 그나마 안전한 ‘자백’ 선택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자백했는데 상대방이 부인하면 자신은 곧바로 석방되고, 가사 상대방도 자백하였다고 하더라도 10년형의 반절인 5년형으로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같은 선택의 곤란함이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둘 다 부인하면 각각 1년형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을 석방의 가능성에 모험을 걸기 위해 또는 공범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백을 선택하게 됨으로써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이지요. 이에 따라 둘 다 자백한다면 형사의 작전은 성공한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소송실무


하지만 이는 경제학 이론 중의 하나인 <게임 이론>을 그럴듯하게 치장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가문의 규수인 '자백의 보강 법칙'을 보쌈하여 구성한 가정적 상황일 뿐입니다. 또한 미국 형사법에 따른 유죄 인정 협상절차(plea bargain)에서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인 데다가, 더욱이 '약속, 협박 등에 의한 임의성 없는 자백'은 증거에서 배제한다는 자백배제법칙까지 적용된다면 그 자백도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에서의 형사소송실무는 다릅니다. 


실제 A, B가 죄를 지은 공범이란 것을 전제로, 공범 A가 자백하고 나머지 공범 B가 부인한다면, A가 무죄가 나오고 B가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 한국에서는 A, B 모두 유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고 다만 자백하는 A는 무죄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있다고 보아 양형상 선처될 따름입니다. ‘자백의 보강 법칙’ 적용에 있어 보강증거는 정황증거로도 가능하므로  A 스스로의 자백이 전후 사정에 비추어 믿을만하거나 신빙성을 부여할 만한 여타 정황증거가 있다면 A는 유죄판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그다음 부인하는 공범 B가 유죄판결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게임이론에서와 같이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맞습니다. 다만 A의 자백이 어느 단계에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① A에 대한 검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에 자백진술이 기재되어 있고 그것이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의 임의성 있는 진술로 인정되거나(대법원 2007. 10. 25. 선고 2007도6129 판결, 대법원 1992. 4. 14. 선고 92도442 판결), ② A가 공판절차에서야 비로소 판사 앞에서 자백하였다면 B는 공범임을 자백하는 A에 대하여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죄의 증거가 됩니다(대법원 2006. 5.11. 선고 2006도1944 판결, 대법원 1992. 7. 28. 선고 92도917 판결). 


참고로 A, B 모두 공동범행사실을 부인할 경우, 그 부인 사실이 증거관계에 비추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다고 판단되면 무죄로 인정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모두 유죄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인데, 게임이론에서와 같이 각각 징역 1년씩 받는 것이 아니라 죄질이 사악하다고 보아 괘씸죄가 추가된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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