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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8. 2017

126 적법절차와 배제법칙

(2014년 1월 20일 칼럼 기고분)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리


“적법한 행위를 하라. 위법한 행위에 법률이 조력하지 않는다.”, “적법한 내용이라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 한다."

이 말들은 사회생활에서 일반 사인은 물론 국가 공권력도 준수해야 할 말들입니다.


현대 법학에서는 내용은 물론 형식도 중요시되고 있음을 누누이 말씀드린 바 있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적법절차의 원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기원은 영미법상 ‘법의 지배’, 대륙법상 ‘실질적 법치주의’ 등이 미국 수정헌법 등을 통해 계승되어 온 것이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5조는 “누구든지 적법절차 없이(without due process of law)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19세기 말부터 '절차(process)'가 적법해야 함은 물론 그 ‘내용’도 적정해야 한다고 선언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논의를 받아들여, 적법절차의 원칙은 형사절차와 관련된 헌법 제12조를 통해 헌법적 원리로 수용되었으나, 그 적용대상을 형사절차에 국한하지 않고 입법, 행정 등 모든 국가작용 전반으로 확대하였습니다.



형사 증거법상의 구현


여러 가지 국가권력 작용 중에서 무엇보다 적법절차가 중시되는 분야는 형사사법절차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적법절차의 이익을 침해당한 자는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을까요?


언뜻 떠오르는 방법은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일 경우 당해 형사사건에서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받을 수 있고(제327조),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닐 경우 그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는 폭행, 협박, 상해 또는 공무집행방해죄나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실체법적으로 처리하는 수 있을 것입니다(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3682 판결, 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도8404 판결 등). 또한 불법적인 방식을 이용한 수사기관이나 국가에게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민사적 책임을 지우거나, 직권남용․직무유기․불법체포감금 등 형사적 책임을 묻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은 그보다 더 원천적으로 위법수사에 대한 증거법상의 페널티를 마련해 놓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증거법상의 배제법칙(exclusionary rule)입니다. 증거재판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형사재판절차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은 페어플레이하지 않으면 골을 넣어도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의학계에서 정확한 병명이나 병인을 파악함에 있어 제외진단(exclusive diagnosis)을 통해 오진 요인들을 배제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제외진단 [exclusive diagnosis, 除外診斷]

진단과정은 크게 제외진단과 적극진단의 2가지로 나뉜다. 제외진단은 각종 검사에 의해 신체병변의 유무와 정도를 밝히고 오진하기 쉬운 질환을 제외하는 것이다. 모든 질환에 필요한 진단단계로 특히 기능성 질환의 진단에는 주의를 해야 한다.


증거목록의 리스트 중에서 위법증거는 유죄인정의 근거에서 배제시킴



1) 자백 배제의 법칙 (형사소송법 제309조)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라고 하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 등이 성행했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고문, 폭행, 허위 약속, 기망, 강요에 기한 자백진술은 증거의 세계에서 아예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통상 자백 배제의 법칙이라고 하나 엄밀히 말하면 '위법수집' 자백 배제의 법칙입니다. 민사법상 사기나 강박,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의 취소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는 그 자백의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도 있을뿐더러 자백을 도출한 절차 또한 위법하니 당연히 배제되어야 함을 근거로 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거나 변호인접견권을 무시하고 받은 자백진술도 위법수집증거로 보아 유죄 인정의 근거에서 배제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2) 위법수집 증거 배제의 법칙(형사소송법 제308조의2)과 "비례의 원칙"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자백뿐 아니라 범죄증거 전반에 걸친 위법수집 증거 배제법칙이 학설과 판례상으로 인정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의 신설(2008. 1. 1. 시행)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 증거(illegally obtained evidence)의 배제 원칙을 명시하게 되었습니다.


증거로는 대표적으로 진술 증거(말)와 비진술 증거(물건 등)가 있는데, 예컨대 <진술 증거>로는 수사기관 앞에서 자신이 살인자임을 자백하는 피의자의 진술 또는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는 제3자의 진술이 기재된 진술서, 진술조서를 들 수 있고, <비진술 증거>로는 살인 현장 근처 방범용 CCTV 영상이나 범행도구 또는 그 도구에서 채취된 지문정보, 혈액정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둘 중에 증거가치가 높은 것은 비진술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진술 증거는 진술자의 머리 속 생각과 혀놀림, 외부의 강압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는 것이어서 피고인이 증거부동의할 경우 원진술자의 증언 기타 신빙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317조 제1항). 따라서 위법하게 취득된 자백 기타 진술 증거(毒樹의 果實이라 할 수 있는 녹음테이프 포함)에는 증거배제법칙이 오래전부터 적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수사기관뿐 아니라 사인(일반인)이 불법도청, 감청한 진술 증거까지 확대되었습니다(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도9016 판결).


다만 비진술 증거에도 위법수집 증거가 적용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법계의 형사소송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범인필벌(犯人必罰) 사상이 짙게 깔려 있거나 진실 발견을 위한 직권주의가 강하므로 절차적 위법은 진실 발견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눈감아 줄 수 있는 걸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행도구나 범죄취득물 등 성상이나 형질이 바뀌지 않는 비진술 증거에 대해서는 정의 실현, 적극적 진실발견의 관점에서 비록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도 증거능력을 부여하였던 것입니다(대법원 1994. 2. 8, 선고 93도3318 판결 등).


하지만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신설 이후 법원의 태도는 일부 변경되었습니다. 영장주의에 위반되는 위법한 비진술 증거(음주운전과 관련하여 알코올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혈액, 경제범죄와 관련된 금융거래정보, 컴퓨터 기록 저장매체 등)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그 이외에 다른 증거가 없다면 무죄를 받을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도2109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도10508 판결,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2도13607 판결 등).


하지만 극단적인 사례로 살인죄 증거수집 과정에서 비교적 사소한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이유로 진범을 풀어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적법절차가 중요하더라도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이라는 이익이 무조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데, 결국엔 이익형량 즉 저울질을 해봐야 합니다. 대법원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1)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2) 오히려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적법절차와 실체적 진실 사이의 저울질




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11437 판결

강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아니한 채 강도범행에 대한 자백을 받고(위법수집 진술증거), 이를 기초로 여죄에 대한 진술과 증거물을 확보한 후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여 피고인의 임의자백 및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대한 진술을 수집한 사안에서,  '제1심 법정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은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최초 자백 이후 40여 일이 지난 후에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으면서 공개된 법정에서 임의로 이루어진 것이고,  '피해자의 진술'은 법원의 적법한 소환에 따라 자발적으로 출석하여 위증의 벌을 경고받고 선서한 후 공개된 법정에서 임의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예외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2차적 증거에 해당한다.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13611 판결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던 피고인이 임의동행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데도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한 상태에서 마약 투약 여부의확인을 위한 '1차 채뇨절차'가 이루어졌는데(위법수집 비진술증거), 그 후 피고인의 소변 등 채취에 관한 압수영장에 기하여 '2차 채뇨절차'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분석한 소변 감정서 등이 증거로 제출된 사안에서, 피고인을 강제로 연행한 조치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하고, 법한체포상태에서 이루어진 채뇨 요구 또한 위법하므로 그에 의하여 수집된 ‘소변검사시인서’(위법수집 비진술증거의 2차적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으나, 한편 연행 당시 피고인이 마약을 투약한것이거나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구체적 제보가 있었던 데다가, 피고인이 경찰관앞에서 바지와 팬티를 내리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였던 사정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 대한 긴급한 구호의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는 점, 경찰관들은 임의동행시점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는 등 절차의 잘못을 시정하려고 한 바 있어, 경찰관들의 위와 같은 임의동행조치는 단지 수사의 순서를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관련 법규정으로부터의 실질적 일탈 정도가 헌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원칙을 현저히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2차적 증거 수집이 위법한 체포·구금절차에 의하여 형성된 상태를 직접 이용하여 행하여진 것으로는 쉽사리 평가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사정은 체포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법과 2차적 증거 수집 사이의 인과관계를 희석하게 할 만한 정황에 속하고, 메스암페타민 투약 범행의 중대성도 아울러 참작될 필요가 있는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때 2차적 증거인 소변 감정서 등은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2094 판결

위법한 강제연행 상태에서 호흡측정 방법에 의한 음주측정을 한 다음 강제연행상태로부터 시간적·장소적으로 단절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피의자의 심적 상태 또한 강제연행 상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피의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대한 탄핵을 하기 위하여 스스로 혈액채취 방법에 의한 측정을 할 것을 요구하여 혈액채취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위법한 체포 상태에 의한 영향이 완전하게 배제되고 피의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었다고 볼 만한 다른사정이 개입되지 않은 이상 불법체포와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러한 혈액채취에 의한 측정 결과 역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수사기관이 위법한 체포 상태를 이용하여 증거를수집하는 등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다고 하여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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