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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8. 2017

127 사마리아인

(2009년 06월 12일 칼럼 기고분)


얼마 전이었습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사랑의 열매’ 자원봉사를 하셨던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더 잘 헤아린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겠거니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성금모금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고 하더군요.

 “크고 검은 차들은 시커먼 유리창을 거의 내리지 않아요. 그런데, 덜덜거리는 화물차들은 삐걱대는 유리창을 겨우 내리고 수고하신다며 천 원, 오천씩 선뜻 내놓고 가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진짜 짠해지던 데요.” 


그분의 생생한 체험기가 어릴 적 여름성경학교 때 들었던 ‘착한 사마리아인’ 얘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 다 잃고 몸도 구타를 당해서 사경을 헤매며 쓰러져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제사장은 옆으로 피하여 갔고, 레위 사람도 자기에게 피해가 올까 봐 피해갔다. 하지만 유대인이 제일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자기 나귀에 싣고, 여관방에 데려다주고 치료하여 주길 부탁하며 많은 치료비도 감당하는 선을 베풀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3절)





키티 제노비스 사건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새벽 3시, 미국 뉴욕의 어느 주택가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밤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렸습니다.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이에 놀란 강도는 황급히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강도는 다시 돌아와 쓰러져 있는 제노비스를 다시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노비스가 또다시 비명을 지르자 주택가 창문에 불이 다시 켜지긴 하였지만 막상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결국 제노비스는 30여분에 걸친 폭행과 칼부림으로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사건 후의 조사에 의하면 38명이나 되는 사람이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었으나,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목격자 38명 중 착한 사마리아인은 단 1명도 없었던 것이지요.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이 사건을 가지고 도덕이 실종된 것이라며, 이들 38명에 대해 집중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개인적 비난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법적 강제를 가하여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고 논의된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입니다. 선함은 도덕적 평가를 전제한 것인데, 선함이 법적으로 강제된다면 그 후의 선행은 적법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남을 도와줌으로써 자신도 큰 위험에 빠질 경우까지 타인에 대한 구조나 원조를 법적으로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규정하고 있는 서구 국가에서는 “자신에게 위험이 없거나 또는 중대한 의무의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라는 제한 하에서 구조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법


우리 형법 제271조 이하에서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특수한 관계에 한해서만 구조의무를 강제하고 별도의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7호에서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 어린이, 불구자, 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죽어 태어난 태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빨리 이를 관계공무원에게 신고하지 아니하면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벌한다”라고 하여 구조신고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처벌도 약하고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습니다. 


한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제5조에서 “①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하여야 한다. ②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의료를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요청하면 누구든지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2000. 7. 1. 시행)”고 하여 일반적인 신고 및 협조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위반 시 처벌규정은 두지 않고 있으며, 2008. 6. 13. 신설된 제5조의2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선의의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한 자는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사상(死傷)에 대한 민사적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제받되,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減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위 응급의료법 규정 또한 엄밀한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아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기적의 표본


제노비스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는 ‘방관자 효과’라고 하여, ‘나 말고도 다수의 사람들이 지켜보니 꼭 내가 나서야 할 필요는 없겠지’하고 목격자의 수만큼 책임감이 분산되기 때문이라 합니다. 


하지만, 방관자 효과를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지하철 영웅들의 사례처럼 ‘선로에 떨어진 저 할아버지를 나밖에 못 봤어라고 느낄 때’, ‘선로에 다리가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한두 사람이 지하철을 밀기 시작한 것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 무거운 전철을 밀어낼 때’라고 합니다. 즉 한 사람의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성서 속의 사마리아인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자기 스스로가 ‘강도 만난 자’처럼 힘들게 느껴지고 암담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방관자로 스쳐 지나쳤다 하여 그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진정 어린 관심을 보냈던 일은 작은 기적의 표본이 되어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관련 판례 소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2. 15. 선고 2010고단3873 판결【유기】


피고인 1. A, 한국철도공사서울역역무과장 

           2. B, 서울역무실공익요원 

주 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 유 


1. 이 사건 공소사실 


가. 피고인 A

   피고인 A는 2009. 1.경부터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서울역 내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다. 

   피고인 A는 2010. 1. 15. 07:30경 서울역 소속 공익근무요원인 C와 서울역사 합동순찰을 마칠 무렵 _층 대합실 물품보관함 앞에서 만취상태 및 갈비뼈 골절상 등으로 인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피해자 Y를 발견하였고 당일은 영하 6.5℃(체감온도 영하 9.7℃)의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철도공안 담당경찰관에게 인계하는 등의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C에게 “노숙자를 밖으로 내보내라.”라고 지시하고, C는 피해자 뒤에서 양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켜 붙잡고 그곳에서 20m 정도 떨어진 서울역 _층 대합실 2번 출구 밖 대리석 바닥에 놓아둠으로써 피해자를 유기하였다. 


나. 피고인 B 

   피고인 B는 2009. 5. 6.경부터 현재까지 한국철도공사 서울역 본부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10. 1. 15. 08:20경부터 서울역 2번 출구 근처 서울역 광장에서 함께 제설작업을 하던 중 같은 공익근무요원인 D로부터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노숙자가 쓰러져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무전을 받고, 같은 날 08:50경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위 1항의 유기장소로부터 그곳으로 돌아와 갈비뼈골절 및 만취상태에서 바지가 엉덩이까지 내려간 채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의사표시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발견하였고 당일은 영하 6.5℃(체감온도 영하 9.7℃)의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철도공안 경찰관 또는 119 구급대에 신고하거나 역사부근의 노숙자 구호시설인 ‘다시서기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공익요원인 E와 함께 피해자를 휄체어에 태운 뒤 주변에 있던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_층 엘리베이터 옆 구석진 곳에 데려다놓으려고 하였으나 마침 그곳에서 청소 중인 성명불상의 아줌마가 “거기에 내려놓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가 서울역 광장 중앙계단 좌측 기둥 옆에 유기하였다가, 이를 현장에서 목격한 ○○백화점 성명불상의 경비원이 “눈 위에 노숙자를 내놓으면 얼어 죽을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해라.”라고 말하자, 같은 날 09:07경 피해자를 다시 휠체어에 태운 후 그곳으로부터 약 200m 떨어져 있는 서울 중구 oo동 _가 122에 있는 서울역사 구름다리(과선교) 아래에 옮겨 놓음으로써 피해자를 유기하였다. 


2. 피고인들 및 변호인의 주장 


   피고인들은 사망한 Y이 부조를 요하는 자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피고인들에게는 유기죄의 고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피고인들은 유기죄에 있어서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다. 


3. 판단 


가. 우선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건대,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우리 형법상 유기죄의 연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나. 우리 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시행되던 의용형법(依用刑法)은 “노유(老幼), 불구 또는 질병 때문에 부조를 요하는 자를 유기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제217조), 제218조 제1항에서는 노인, 어린이, 불구자 또는 병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유기한 경우에는 이를 가중처벌하였다. 의용형법은 부조를 요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회 구성원 누구나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기본 구상으로 하면서 특별히 요부조자를 도와야 할 법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 그런데, 1953년 제정 당시의 우리 형법은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71조 제1항]. 의용형법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 형법은 부조를 요하는 자 가운데 “기타사정”으로 인한 자까지 포함하여 유기죄의 성립범위를 확장한 반면에 보호할 의무 있는 자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함으로써 유기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한 것인데, 1953년 우리 형법의 입법자들은 형법전 심의 당시 6·25 전쟁으로 야기된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궁핍상태를 감안하여 한편으로는 부조를 요하는 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조의무자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유기죄로 인한 지나친 처벌을 방지하려고 하였고, 이와 같은 태도는 형법이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되면서 유기죄의 법정형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만 바꾸는 것으로 개정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라. 그 결과 우리 형법은 유기죄를 규정함에 있어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기본형식으로 취하지 아니하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만을 범죄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신분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기죄로 공소를 제기하면서 피고인들에게 철도공안담당경찰관에게 인계하거나 119 구급대에 신고하거나 역사부근의 노숙자 구호시설인 ‘다시서기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 유기죄에 있어서 법률상의 의무란 부조의무의 근거가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는바 당해 법령이 공법(公法)인가 사법(私法)인가는 묻지 않는데, 공법에 근거한 경우로서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관의 보호조치의무(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 제1항 1), 제4조 2))를 들 수 있다. 도로교통법 상 사고운전자의 구조의무도 부조의무의 발생근거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 의무의 불이행은 관련법률에 의하여 독자적인 범죄를 구성한다고 하겠다(도로교통법 제148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사법상 발생하는 부조의무로는 예컨대, 민법상 친권자의 자에 대한 보호교양의무, 친족간의 부양의무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사. 위와 같은 해석에 비추어 이 사건의 피고인들이 유기죄에 있어 법률상 부조의무가 있는 자인지에 대하여 살피건대, 검사 제출의 증거들 중에 피고인들의 구조의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검사는 보충역으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을 배정받아 임무를 부여하고 이를 지도·감독하는 공공단체인 한국철도공사의 직원인 피고인 A와, 공익근무요원으로 그 직무상 행위가 공무수행에 해당하는 피고인 B로서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건강을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공익근무요원의 행위를 공무수행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나, 이러한 공익근무요원들을 배정받아 지도, 감독하는 단체의 직원이라고 하여 바로 요부조자를 구조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철도안전법 제1조는 “이 법은 철도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철도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목적을 정하고 있어 위 법의 주된 목적은 철도안전이라고 할 수 있고, 제48조 제8호에 의하면 누구든지 역시설 또는 철도차량 안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고, 같은 법 제50조 제5호는 철도종사자는 이에 위반하여 금지행위를 한 자나 물건을 밖으로 퇴거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한국철도공사법에도 직원 등의 부조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없다. 


아. 검사는 형법 제18조의 부작위범에 관한 규정이나 민법 제734조의 사무관리 규정 등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유기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형법 제18조 부작위범 규정을 원용하려는 주장은 입법자가 형법 제271조 제1항 에서 부조의무의 발생근거를 특별히 제한한 취지에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하고, 사무관리나 관습, 조리 등에 의해서도 부조의무를 확장하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입법자의 명시적 결단에 의하여 부조의무자의 범위가 제한된 점, 형법 제271조 가 보호의무의 근거를 법률상·계약상 의무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무관리·관습 또는 조리에까지 확대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는 점, 관습·조리·공서양속·사회통념과 같은 불확정개념을 가지고 가벌성의 근거로 하는 경우 법관의 자의적 판단할 초래가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이러한 확장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사무관리는 원래 재산상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의무 없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 경우에 인정하는 제도이므로 이를 특별한 근거 없이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범에 그대로 확대 적용할 수는 없고, 사무관리·관습·조리가 민법이라는 법률에서 규정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의 “법률상” 보호의무에 포함될 수는 없다. 단순한 규정이 아닌 보호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률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 한편,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7호 는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어린이·불구자·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죽어 태어난 태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빨리 이를 관계공무원에게 신고하지 아니한 사람을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부조를 요하는 사람을 신속히 보호·구제하고 재해 등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공무원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그 요보호자가 발견된 장소의 관리인이나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요보호자가 발견된 장소를 관리하고 있는 자에게 신고의무가 있다고 하여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차. 그렇다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들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도록 한다. 


4. 판결을 마치며 


   피고인들이 노숙자였던 위 Y를 서울역사 밖으로 내보내던 시각 이전인 같은 날 07:15경 112신고를 받은 경찰관과 119구급대원들은 동인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여 Y의 생체리듬을 체크하는 등 살펴보았으나 정상이었음을 확인하였고, 동인은 괜찮다는 의사표시를 할 정도였으며, 이에 경찰관과 119 구급대원조차 동인의 몸에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동인을 단순주취자로 판단한 채 철수하였다. 그러나, 노숙자인 Y는 같은 날 12:22경 서울역사 구름다리(과선교) 아래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는데, 부검결과 위 피해자는 혈중알콜농도 0.157%의 만취상태에 있었고, 사인은 동사(凍死)가 아니라 흉부의 고도손상(오른쪽 제2-12번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 오른쪽 폐의 파열)이었다. 노숙자였던 망인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인 이날 참으로 고달픈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기저기를 타인에 의해 부축을 당하거나 휠체어에 실려 다니면서 결국에는 차가운 곳에 버려져 이승을 하직하였으니, 그 심신의 피로가 오죽했을까 싶다. 망인의 사망이라는 불행한 결과만으로, 형법상 유기죄에 있어 보호할 의무 있는 자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한 입법자의 결단이 있는 현행 형법 하에서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피고인들로서는 자신들의 형사책임을 떠나 망인의 죽음 앞에 도덕적인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망인이 사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사람들이면서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인 노숙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앞으로도 함께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많은 고민을 남긴 채로 먼 길을 가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판사 권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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