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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r 13. 2020

봉준호 예찬론

이상적인 리더란

20.02.10일.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날이다. 미국 로컬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 무려 4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최고 영예라 불리는 작품상, 감독상까지 타지에서 전해온 낭보에 매우 놀랍고 기뻤다. 이 기세를 몰아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MBC 스페셜 다큐 '감독 봉준호'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는 영화광 말에 의하면 봉준호 감독님은 송파구에 거주하며 꽤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영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취업도 포기하고 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한 것을 보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큐에서 드러난 봉준호 감독님은 내가 알던 사실과 사뭇 달랐다. 살인의 추억 이전까지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저 영화를 간절히 꿈꿨던 청년이었다. 첫 입봉작의 실패에 동기에게 쌀을 받아가며 그리고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병행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생활을 했던 것이다. 내 생각이 얼마나 편견이었는지, 그리고 칸과 아카데미를 평정한 대한민국 최고 감독도 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더 주목한 부분은 '인간' 봉준호 감독님이었다. 라디오나 시사회 등에서 그의 언변을 통해 짐작해왔지만 내 생각보다 더 겸손하고 배려심 깊고 유머러스한 분이었다. 특히 이번 아카데미 시상 이후 그의 수상 소감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그의 성취도 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그의 언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상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함께 노미네이트 된 동료 감독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함께 고생해준 스태프와 지인들에게 감사인사를 잊지 않고, 게다가 빼놓을 수 없는 봉준호식 유머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고 얼마나 가슴으로 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배려와 감동, 유머가 있는 명품 수상 소감에 현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축복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 될 재목이란 것은 다큐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김혜자, 송강호, 김뢰하, 변희봉 등을 비롯한 감독 봉준호와 작업한 배우나 스태프들은 그의 인성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배우를 캐스팅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인데, 말하자면 이렇다. 당시 송강호 배우는 톱스타였고, 봉준호 감독은 입봉작이 실패한 신인 감독이었다. 그런 톱스타를 섭외한 것은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의 인성이었다. 모텔 선인장 시절 캐스팅에 탈락한 송강호 배우에게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번 작품에서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어 죄송하고, 좋은 기회로 다시 뵀으면 좋겠다"는 식의 진심 어린 말들을 삐삐에 장문으로 남겨놨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대배우 송강호의 마음을 움직여 살인의 추억이란 걸작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듯 봉준호 감독님은 예의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었고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진심 어린 표현을 뱉는 분이었다. 때문에 현장의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까닭에 나는 좋은, 이상적인 리더의 표본은 바로 봉준호 감독님이라 생각한다. 내가 닮고 싶기도 한 분이기도 하다. 실력은 물론이고, 함께 작업하는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면서 기분 상하지 않게, 또 한 마디 표현으로 타인을 감동시키는, 적재적소의 유머와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많은 이들을 잘 이끌면서 최고의 위치에서 겸손의 미덕도 잊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영감을 받는다. 인생에서 누굴 만나냐는 굉장히 중요한, 어쩌면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형태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봉준호 감독님 같은 분을 멘토로 만난다면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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