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운동 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섭 Mar 22. 2020

링 위를 보는 것과 링 위에 서는 것은 다르다.

무에타이 수련기 2. 스파링

무에타이를 시작한 지 2달 하고 일주일 여만에 링에 올랐다. 부관장님의 계속된 헛바람으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스파링을 결정했다. 사실 많이 겁났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데다 마지막으로 싸운 기억이 초3 때라 누군가와 맞다이를 뜬다는 일은 나를 겁먹게 했다. 그러나 나는 꽤 도전적인 걸 좋아하고 요즘 삶이 무기력해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링에 오르기로 했다. "무작정 도전해야지, 계속 그렇게 미루다가는 영영 도전 못 해."라는 부관장님의 한 마디도 꽤 영향이 컸다.


'콤비네이션이 중요하다, 같은 발 킥 연타가 중요하다, 디펜스가 중요하다, 체력이 중요하다, 딥으로 거리를 벌린다' 등 스파링을 준비하며 나름 열심히 작전을 세웠고 혼자 연구했다. 그래도 ufc 시청 짬밥이 있어 선수들 경기 영상도 참고하고 유튜브도 보며 격투 지식을 충전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링에 올라갔다.


그러나 역시 링 위에 서는 것과 링 밑에서 구경하는 것은 정말정말(!!) 많이 다르다. 마치 영화 악녀의 촬영기법처럼 굉장히 빠르게 눈 앞의 장면이 바뀐다. 상대의 주먹세례에 정신이 없다. 가드를 올리거나 더킹, 위빙 같은 동작으로 주먹을 막거나 피하는 것은 영화, 드라마의 극적 연출이고 현실에선 천상계 선수들만이 가능하단 것을 그 날 깨달았다. 물론 헤드기어와 보호장구를 끼고 있어 다칠 일은 없지만 생존 본능이 깨어난 것 실로 오랜만이었다. 살기 위해서 나도 주먹을 뻗어야 했다. 그렇게 폭풍 같은 3분이 지나갔고 로우킥에 맞은 내 허벅지는 아직도 아프다. 유일하게 허벅지엔 보호장구가 없기에 로우킥은 데미지가 있다. 다음부턴 로우킥 연습에 충실해야겠다.


아무튼 그래도 잘한 게 있다면 첫 스파링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압박이 거세긴 했지만 세 대 맞으면 한 대 정도는 돌려줬다. 그리고 부관장님께서 코칭해줬던 대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계속 카운터로 뻗어 많이 맞힐 수 있었다. 그리고 킥도 섞어가며 나름 선방했다. 그래서 사범님들에게 첫 스파링 치고는 잘했다는 감개무량한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점을 꼽아보자면 가드와 체력이다. 공격 뒤에는 바로 가드를 올려서 방어해야 상대의 폭풍 펀치 세례에 내 고개가 뒤로 젖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드가 아니라 상대의 주먹을 두려워하지 않는 깡다구가 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한 라운드 1분 30초, 총 3분이었지만 후반에는 가드가 조금씩 내려가고 숨이 가빠오는 등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앞으로 조금씩 피통을 키워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스파링=맞짱, 싸움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감정이 섞이면 싸움이고, 감정 없이 실력을 겨루면 스포츠라 생각하기에 나는 각자의 기술과 체력을 겨루는 것이 이런 격투 스포츠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사범님 말처럼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그러니까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방증이다. 이 말이 기억에 남고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열심히 해나가야겠다. 두 달 뒤 다시 링에 오르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복싱인 줄 알았는데 무에타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