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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Apr 30. 2020

사냥의 시간은 왜 명품 스릴러가 될 수 없었나

[신작영화 리뷰]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

부제: '사냥의 시간'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되지 못한 이유


사냥의 시간을 극장에서 보기를 기대했던 것은 윤성현 감독의 이전 연출작 <파수꾼>을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작에서 함께 했던 이제훈, 박정민 배우에 안재홍, 최우식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사냥의 시간의 국내 극장 개봉은 취소되었고 한 차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아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본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짐작컨대 이 영화를 기대하던 많은 국내 팬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기대가 무색하리만큼 영화는 중반을 넘어가며 망작의 냄새를 풍겼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그나마 흥미로웠던 초반부의 케이퍼 무비 형식의 박진감과 스릴은 영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인물들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결국 끝에는 어떻게 될까?'하는 스토리 상의 궁금증과 기대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 없이 장면장면으로서의 긴장감(예컨대 누가 뒤에서 다가와 총을 쏘지 않을까 하는)만 잔뜩 남아버렸다. 물론 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 씬 단위의 서스펜스라고는 하나, 갈수록 산으로 가는 개연성과 납득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은 중심 서사 없는 이미지의 나열일 뿐이었다. 비유하자면 속 빈 강정 느낌이랄까. 때문에 쥐어짜내식의 서스펜스가 넘쳤던 씬들이 누적되면서 피로감만 더해지는 꼴이 되었다.


물론 이 영화 하나를 놓고 세세히 뜯어 분석하며 리뷰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걸작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가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이 영화가 생각난 이유는 두 영화가 지닌 몇몇의 공통 분모 덕분이었는데 짚어보자면 이렇다.


1) 모든 원흉은 돈이었다는 것. 그놈의 돈 때문에 쫓고 쫓기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비극의 시작된다.

2) 때문에 영화의 중심 플롯이 추격전 형태라는 것. 여기서 영화는 특정한 장르적 색채를 가질 가능성이 높으며 두 영화 모두 그 점을 영화의 차별점으로 삼았다는 것.(내 뇌피셜)

3) 그렇기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서스펜스 혹은 스릴이라는 것. 때문에 주인공 혹은 영화 내의 인물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불안이 영화 밖의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야 한다. 이것이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한 포인트가 되리라. 

4) 두 영화의 메인 빌런은 모두 싸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악당이라는 것. 게다가 영화 세계관 내에서 누구도 함부로 대적하지 못할만큼 강한 악으로 묘사됐다.


이 외에, 윤성현 감독이 사냥의 시간을 연출할 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레퍼런스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폐도시의 길거리에서 이제훈과 안재홍이 박해수에 맞서 총싸움을 하는 씬인데, 길거리 총격전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등장하는 씬이다. 추측하건대 감독은 어느 정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연출을 참고했으리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길거리 총격 씬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몇 가지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사냥의 시간은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이 스릴러의 교본이 될 수 없었는가?'이다. 그에 대해 몇 가지 얘기해보고 싶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악역'이라 생각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메인 빌런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하면 단발머리와 낮은 중저음,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공기총이 기억난다. 특히 그가 경찰을 죽이고 탈주해 길거리에서 사람 머리에 공기총으로 구멍을 뚫는 첫 등장 시퀀스는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이처럼 추격전 플롯의 경우 빌런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안톤 쉬거의 경우 특징이 뚜렷해 기억에 남으면서도 표정 하나로 불안과 공포를 조성한다.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야 하는 악인의 숙명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사냥의 시간의 메인 빌런 '한'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 물론 주인공 일당을 압도하는 포스를 지녔으나 여느 영화에 나올 법한 특징 없는 킬러였다. 싸이코패스 같다라는 생각을 제외하면 뇌리에 남는 특징이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 특징 지을 만한 구석은 많았다. 경찰에서도 풀어줄 만큼 어떤 빽이나 힘이 있는 것 같고, 경찰이면서 사람을 죽이고 다니기도 하고, 살인을 놀이처럼 즐긴다. 굉장히 미스터리하다. 그렇지만 영화가 진전될 수록 이런 미스터리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정보를 너무나 꽁꽁 싸맨 탓에 후반부로 갈수록 미스터리는 답답함으로 변질된다. 떡밥은 여럿 뿌렸으나 회수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의 연장선으로 빌런 '한'의 분량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를 더 비중 있게 다뤄야 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는 강렬한 등장 이후에 계속 그의 행적을 따라간다. 길거리 승객, 마트 점주, 호텔 직원, 그리고 또다른 킬러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무차별적으로 공기총으로 쏴죽인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부상을 당하기도 하여 자가 치료도 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안톤 쉬거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그의 생각이나 감정, 심리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언제나 '이번엔 또 누가 죽을까' 하는 공포와 불안감이 생긴다. 빌런을 비중 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한은 절대적 분량 자체가 적을 뿐더러 그가 나오는 씬은 말 없이 주인공 일당을 쫓아가 총질하는 게 대부분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라곤 '재밌네요. 5분 줄게요. 최대한 멀리 도망가봐요.' 정도다. 한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 나아가 심리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다. 관객들에게도 그를 좀 더 이해할 겨를을 줬어야 했다. 안톤 쉬거처럼 쫓는 대상 이외에 다른 인물들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서스펜스를 끌어올려야 했다. 주인공이 있는 곳에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조여' 왔어야 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와 <사냥의 시간>의 한(박해수 분)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주인공 일당이다. 빌런과의 관계를 얘기하고 싶은데 쉽게 말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강 - 중강의 구도였다면, 사냥의 시간에서는 강 - 약의 구도다. 때문에 전자의 경우 빌런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격 가능성이 있으며(쫓기는 주인공은 퇴역 군인에 저격수며 두뇌 플레이가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한 길거리 총격 씬 같은 것이 긴장감 있게 연출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주인공 일당은 허세로 가득찬 양아치 일당인 탓에 반격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한다. 겁을 한 바가지 먹고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기를 반복한다. 때문에 비슷하게 도망가고 죽을 뻔하다 살고 그러다 부상 당하여 계속 쫓기는 그림만 지난하게 반복될 뿐이다. 영화의 엔딩 즈음에 와서야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인지한 주인공이 그제서야 반격할 생각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몸에 박힌 총알과 친구의 죽음이 돌아올 뿐이다. 더욱 애석한 것은 영화로서의 스릴은 이미 지루함으로 변했고 하이라이트로서 기능할 액션씬은 그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머리싸움과 추격으로 서스펜스를 쌓고 총질 액션의 카타르시스로 폭발시킨 연출과는 사뭇 대비되는 지점이다. 정리하자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 대결 구도는 추격 과정에서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예상대로 흘러가버리는 예측 가능성은 스릴러 영화에서 독이 될 경우가 많다.


매력 없는 빌런, 또 빌런에 대한 설명 부족, 그리고 밸런스가 붕괴된 대결 구도. 결국 이 세 가지 차이가 사냥의 시간을 매력 없는 영화로 만든 게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세 명이 겁먹고 도망가는 장면을 보여줄 게 아니라 또 그 외에 굳이 안 나와도 될 캐릭터들(예를 들어 최우식의 부모님이나 심지어 조성하, 박정민까지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에 분량을 할애할 게 아니라 빌런 한(박해수 분)의 비중을 좀 더 늘렸어야 했다. 또 그에 맞서는 주인공 일당도 좀 더 지능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3 대 1임에도 도망만 다닌다.


이 밖에도 사냥의 시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지점은 더 많지만 (주인공 일당들의 납득 안가는 도피 방식, 한이 총포상 형에 의해 복수당하는 결말, 이제훈과 박정민 사이의 스토리와 작전 과정 수행 중의 변화된 심리, 심지어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대한 것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교했을 때 주요 포인트들만 언급해봤다. 사실 파수꾼을 인상깊게 본 팬으로서 전작에서 윤성현 감독이 연출했던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과 그 변화 과정들이 이번 영화에서 전혀 볼 수 없던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작년 상업영화의 대표주자 마블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극강의 빌런 타노스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노스의 심리와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모라와의 관계 그리고 가모라를 제 손으로 죽이고 난 후 심정의 변화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영화의 흥행에 견인한 주요한 이유라 생각하기에, 한국독립예술영화의 입지전적인 영화라 평가받는 파수꾼의 연출자가 후속작에서 이를 간과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파수꾼 속 고등학생 일당이 양아치 일당으로 변해 답도 없이 사고 치고 다니는 듯한, 딱 그 정도 느낌의 영화가 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를 곱씹어보니 '이 영화가 예정대로 극장에서 개봉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서스펜스가 중요한 영화인 만큼 극장의 압도적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였다면 영화가 끝난 후 내 감상은 달라졌을까. 영화에서 연기와 음악만이 제 역할을 해줬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냥의 시간

별점 1.5점 / 5점


생각난 영화: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파고>, 최둥훈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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