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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Apr 15. 2020

강렬하지만 불쾌한 영화, 미스틱 리버

클린트 이스트우드 명작 2

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였다. 당시 영화를 꿈꾸는 방구석 작가였기에 이 영화 저 영화를 찾아보고 시나리오들을 읽곤 했는데, 당시 그 영화를 VFX studio의 강사님께서 추천해줘 바로 기숙사에서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와' 하고 감탄한 나는 이후 그랜토리노, 미스틱리버 등을 보려고 외장하드에 쟁여놨지만 그것보다 먼저 봐야할 영화가 많다는 이유로 그 명작들을 제쳐놓았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바로 오늘, 미스틱리버를 보게 됐고 든 생각은 '비극의 교과서' 같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에 나오는 몇 가지 공식처럼 아주 잘 짜여진 이야기였다는 의미다. (주의: 앞으로 쓸 내용엔 약간의 스포가 포함돼있음.)



강렬하고 미스터리한 시작

시작은 세 친구로부터였다. 동네 한적한 도로에서 하키를 하던 지미, 숀, 데이브 세 친구는 도로의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며 장난을 치는데, 이를 지나가던 어떤 형사들이 보고 꾸짖는다. 그리고는 세 친구들 중 하나, 데이브를 집으로 데려가 엄마에게 고자질하겠다며 차에 태운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데이브가 나온다. 영화는 시간의 점프를 활용하여 미스터리함을 남기는데, 후에 관객들은 이 내막을 형사로 위장한 아동성애자 두 명이 데이브를 유괴해 강간한 사건임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거의 씨앗과도 같은 사건이 지금 이 영화의 중심 사건인 '지미의 딸이 살해당한 사건'과도 연관이 깊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데이브



유력 용의자 몰아가기와 폭발하는 연기력

과거의 비극 때문이었을까, 세 친구는 그렇게 멀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세 친구가 다시 엮이게 된 것은 지미의 딸이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지미는 피해자의 아버지로서, 숀은 사건의 담당형사로서, 그리고 데이브는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서 말이다.


물론 감독은 데이브가 유력 용의자인 것을 서서히 드러낸다. 사건이 있었던 그 날, 데이브는 지미의 딸과 같은 술집에서 눈인사를 나눴으며 피투성이가 된 채 새벽 3시에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아내에게 자신에게 시비를 건 강도와 결투를 벌이다 손을 다쳤으며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를 무자비하게 때려 아마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이후 그를 향해 조여오는 숀의 수사망에 횡설수설하는 모습, 불확실한 그날의 정황, 과거의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의 심리와 행동을 보여주며 극 중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데이브를 범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대게 이런 수사물 장르에서는 한 용의자로 유력하게 범인으로 몰아가는 방식을 통해 미스터리함을 점점 해소시키며 서스펜스로 바꾼다.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장르적 특성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였다. 특히 압권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내면을, 감정의 응축과 폭발을 넘나들며 보여준 숀 펜의 연기였다. 주, 조연급의 이러한 연기들로 인물들의 감정선에 동화될 수 있었던 점이 관객들을 극 안으로 깊숙히 끌어들여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것이 아닐까 한다.



클라이맥스와 반전

이러한 장르 영화에 꼭 필요한 것은 긴장감 최고조를 이루는 클라이맥스와 납득할 만한 해소일텐데, 이 영화는 그 두 지점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클라이맥스는 지미가 데이브에게 복수하는 장면과 숀이 유력 용의자를 마침내 찾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시퀀스다. 설마했던대로 데이브는 진범이 아니었고(피투성이가 된 이유는 직접 영화로 보시길), 영화에 간간이 등장한 인물이 진범이었는데, 각 장면의 두 자루의 총 때문에 긴장감과 불안감이 조성되고 마침내 진범의 정체가 공개된다. 소위 씨뿌리기와 거두기처럼 앞에 대수롭지 않게 깔리는 것들이 복선이었고 그로 인해 갑툭튀가 아닌 반전으로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자아낸다. 정확히 교과서적인 스토리텔링이며 비극의 정석이었다.



피해자의 아버지와 유력 용의자로 만난 지미와 데이브


수미상관의 엔딩

영화의 마지막에 첫 장면의 그 도로에 다시 서있는 지미와 숀을 보여준다. 그때 차로 끌려갔던 어린 데이브와 그를 바라보는 듯한 어른 지미와 숀을 병치시키며 "그때 그 차엔 우리 모두 다 같이 타있던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곤 어린시절 굳지 않은 시멘트에 쓰여지다만 "DA.."(데이브의 이름)을 다시 보여주며 여운을 남긴다. 미스터리했던 첫 씬이 영화에 몰입해서 따라온 관객들에게 여운이 남는 마지막 씬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찝찝하다.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은 데이브는 성인이 된 후에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려 불행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지미와 숀의 어둡지 않은 표정과 왁자지껄한 퍼레이드는 사뭇 대조적이었으며 데이브가 수장되어 있을 '미스틱 리버'는 끝없는 심연을 향해 가듯 어둡고 깊어보였다. 영화의 엔딩을 통해 감독은 어쩌면 비극을 겪은 인간의 계속적인 불행, 그리고 그 피해자를 결국 어떻게 구원할 지에 대한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는 지도 모른다. 잔인하고 찝찝하고 약간은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결말이었다.


마치 멀어져가는 데이브를 응시하듯, 도로를 바라보는 지미와 숀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인간 사이에 피어날 수 있는 깊은 유대에 대한 무한 감동을 느꼈다면, 미스틱 리버는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이기심과 복수심, 그리고 파괴 본능 같은 것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성인이 된 세 친구들이 이제 서로 "친구 아니야."라고 한 치의 고민 없이 말하는 대사가 아마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씁쓸하고도 찝찝하지만 굉장한 긴장감과 몰입감, 그리고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끝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끊임 없이 품게 되는 그런 영화였다.


4점 / 5점


내 기준 비슷한 류의 영화: 데이빗 핀처 <세븐>, <조디악> / 드니 빌뇌브 <프리즈너스> / 조나단 드미 <양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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