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개국, 2,000명의 목소리

Woman

by 홍화일


1시간 45분짜리 다큐멘터리.

다큐 초보가 접근하기에는 장벽이 낮지 않다.


혼자서는 절대 시도해보지 않았을 이 영화를 우연히 볼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한다.




어떤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과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눈을 마주치고 입이 열리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느 머나먼 나라,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는 내 앞에 있는 당신의 이야기가 되어 실체를 가진다. 우먼은 그 실체들과의 만남이었다.

대개 ‘여성’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여성의 이미지들, 아니면 여성에 의한, 혹은 여성이기에 일어난 사건들. 내가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하든 실제로는 그렇게 떠올린 모든 상상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인생들이 있다. 내가 스스로 떠올리지 못한, 내가 알고 있을지언정 믿지 못했던 인생들이다.


그렇기에 우먼은 수천 명의 여성이 등장함에도 솜사탕같지만은 않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희극이고 비극이다. 뉴스 기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었던 이야기는 감정의 멱살을 잡고 뒤흔든다. 그러나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컨텐츠에 익숙해져 있던 내 속이 정결해지는 느낌이 든다.


우먼은 다양한 부류의 여성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등장시킨다.

최근 떠오르는 키워드인 코르셋만 대보더라도 코르셋을 코르셋으로 인지하지 않는 여성, 코르셋 안에서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여성, 코르셋에 순응하는 여성, 코르셋을 탈피하려는 여성이 모두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선정 과정의 고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일반화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여성을 너무나 좁고 단순한 범위의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지난 기억을 반추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우먼의 여성들을 보는 시선은 일정하다. 코르셋, 우먼 임파워링, 학대, 가족, 사랑, 임신, 낙태, 폭력, 여성 질환 같은 여성의 수많은 장르를 세심하지만 담담하게 다룬다. 사랑에 빠진 사람, 출산을 앞둔 임산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등장하고, 같은 시선으로 가정폭력의 피해자, 성폭력과 유방암 생존자가 등장한다. 감정은 관람객의 몫이다. 웃기고 슬프고 화가 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도 영화와 함께 비로소 여성을 어떠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성별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밟았다. 여성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여성이 아닌, 인간의 희노애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