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현실인 세계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

돈 룩업

by 홍화일

작감배가 야심차다.

영화의 시작도 야심찼다.

그 외 몇몇 부분들도 꽤.


마지막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흐릿한 점이 감독의 전작까지는 매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안팎으로 요란한 영화에 주제마저 흐리멍덩하다 보니 갈피를 잃었다.


풍자가 재밌는 이유는 현실을 한번 틀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실 그 자체가 보고 싶은 사람은 보통 다큐멘터리나 고발 영화를 보지 풍자 영화를 보지 않는다. 누군가 굳이 풍자 영화를 틀었다면 대개는 그 영화가 어떤 현실을 얼마나 기발하고 어떻게 웃기게 비꼬았는지를 기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 것들을 기대하며 끝까지 봤다. 다 보고 나니 내가 얻은 게 뭔지 아리송하다.


영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풍자를 쏟아낸다. 혹여 관객들이 못 알아챌까봐 웃어야 할 지점들까지 대놓고 가리키며 노골적으로 짚어주고 있다.

그런데. 웃어야 하는데 웃음이 안 나온다.

보면 볼수록 잇몸이 아니라 입꼬리가 말라간다.

웃픈 것과는 다르다.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그냥 좀 짜증이 날 뿐이다.

그렇다고 100% 나쁘지는 않았다. 초반 한 15분까지는 기대했던 바로 그런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많은 시도들이 웃긴데 안 웃긴 건 비유가 아닌 사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농담은 때로 진담이 된다.

스스로 내리는 결정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멍청한 금발 여성과 그를 비롯한 다양한 클리셰들을 2022년 정초부터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영화는 여러 가지 장치로 정치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판국에 실제 영화계에서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소모되는지까지도 엉겁결에 같이 드러낸다.

굳이 이런 장면을?... 굳이 또 이런?... 굳이 또?

굳이의 연속이다.


현실 속 풍자, 풍자 속 현실, 액자식 구성인지 소 발의 쥐 잡긴지 어쩌면 감독이 아주 깊은 고민을 거쳐 두 번 꼬아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다. 뭐였든 안 웃겼다.

어떻게 보면 동정적 웃음을 유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해학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안 웃겼다.

임금님 앞에서 벌이던 놀이판을 동네 마당에서 그대로 벌이면 어느 관객이 웃겠냐고.


심지어 배우들은 연기를 너무 잘한다. 정말이지 실감 나는 연기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덕분에 영화는 어설프게 웃다 만 잔재마저 싹 말려버리는 현실감까지 얻었다.


생각이 정리되고 보니 영화를 보고 남은 게 있다. 과유불급이란 조상님들의 가르침을 일찍부터 배워온 데 대한 깊은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