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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Jan 14. 2017

오롯이 그는 그렇게 서있었다

예전의 아버지를 추억하며




나는 사실 우울해지는 글을 쓰기 꺼려했다. 보통의 일부 남성들처럼 감정에 대한 표정이 서툴고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위안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 위안은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나를 잘 아는 친구 녀석의 조언에 따라 브런치를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글쓰기란 내 인생의 중요 시점에서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몇몇의 작가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일부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며 소중한 추억들을 공유해주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한 작가의 글이 유독 마음에 들었는데 그 글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사실 비슷한 경험을 2015년에 겪었다. 하지만 한 번도 글로서 그것을 표현해보지 못했다.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스스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버님은 꽤 오랜 시간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한창 건강하시던 시절의 모습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낚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연상하여 짧게 표현했던 문장들이 있었다. 이 작은 문장들로 예전의 아버님을 상상해본다.



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마주 보고 서있다. 시원한 듯한 느낌이 그의 패인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언젠가 소년이었던 그의 얼굴에는 꽤나 많은 주름이 남아있다. 눈빛은 오묘하게 빛이 난다. 때로는 우수에 젖은 듯, 언젠가는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듯 한없이 깊고 아늑하다. 바다는 말없이 그의 눈동자와 함께 출렁인다. 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다. 몇 달 전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언젠가 지금보다 어릴 그 당시에도 그 둘은 그렇게 대화를 했다. 가끔은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언젠가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또 언젠가는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의 건강만을 기원했다. 그리고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자식은 어느새 다 자라 본인의 직장을 갖고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무엇인지 하나 해내었다는 작은 만족감을 가져본다. 바다는 말해준다. 그리고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을 치하한다. 그는 멋쩍게 웃는다. 이제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어졌다. 기약 없는 끝을 향하는 그의 여행은 아직도 엔딩을 알 수 없는 영화이다. 그는 스스로 다짐해본다. 얼마를 더 살아가든지,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소망한다. 자신은 항상 다음 순서이다. 그다음은 나도 행복해도 되겠지라는 자소 섞인 혼잣말이 바람을 따라 퍼져나간다. 가늠할 수 없는 바다만큼이나 그의 야위어진 뒷모습이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항상 그렇게 서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감당한 채로 그렇게 서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분처럼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 아직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기에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낸 분들은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누구의 위로도 크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살아가다 문득 다시 생각이 나면 더욱더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소설* 속 그 한마디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살아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소중한 추억을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소위 어른이라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반갑지 않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힘을 내면 좋겠다. 지금도 열심히 내딛는 발걸음에 따듯한 위로와 희망을 담으면 좋겠다. 그대도 그리고 나도 말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억하며,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분들을 추억하길 바라며,




*소설 <산책자의 행복> 중에서, 조해진 저


https://youtu.be/wYXpktrUTtg

우연한 기회에 접한 연주인데 작은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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