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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Jan 17. 2017

모든 것을 말해주는 눈빛

Sting 그리고 그들




Sting을 유독 좋아하는 친구 커플이 있다. 그들은 기타로 어설프게 'Shape of my heart'를 연주하려는 내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었다.

"Sting은 부르려고 하면 안 돼. 그냥 감사하게 들어야 해."

사실이었다. Sting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분명 목소리는 입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가끔은 눈빛에서 나오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 커플은 그런 Sting을 자주 즐겨 들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Sting을 들을 때마다 그 커플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이들의 시작이 어땠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절친했던 나의 친구는 사귀기 전 실시간으로 나에게 조언을 구했었고 나도 나름의 최선으로 그를 도왔다. 항상 기억나는 것은 그들이 사귀기 직전의 나눴던 대화들이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친구 녀석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들만의 오붓한 대화였지만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고민이 담긴 시간인 듯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2014년의 이맘때였다.




 여자는 앞에 놓인 맥주잔을 바라보고 있다. Tennent's 마크가 새겨진 맥주잔에는 송골송골 물방울들이 맺혀있다. 여자는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말을 시작했다.

"요즘 누굴 만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고개를 떨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는 한 남자가 건너편에 앉아있다. 그는 그녀를 꽤나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게 요즘은 아닐 거예요. 좋은 인연은 그만큼 찾기 힘들어요."

"좋은 인연이라는 게 뭔데요?"

그녀는 즉각적으로 반문했다. 오묘한 웃음을 동반한 그녀의 질문에도 남자는 차분하게 대응한다.

"공감이 되는 사람이겠죠. 딱히 착하거나 돈을 잘 벌거나 무척 잘 생긴 게 중요하다기보다, 나 자신이 움직이고 느끼는 방향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그것만 맞으면 나머지는 이해가 가능한 범위에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는 다소 생각에 잠긴 듯 다시 맥주잔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무심코 스치고 지나간 궁금증을 풀어놓는다.

"누가 그랬어요? 그런 말을."

남자는 그제야 다소 당황한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지나간 사람이요. 사랑은 예전 사랑을 통해서 배우는 거죠. 책에선 알 수 없어요."

이것은 긴 밤의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우리는 이러한 순간을 흔히 공감이라 불렀다.


기분 좋은 취기가 오고 가면서 어느덧 시간은 멈춘 듯 고요해진다. 주변의 사람들은 하얀 공백이 되어버리고 단지 두 사람의 공간만이 남았다. 여자의 총기 가득한 눈빛은 그에게 고정되어있다. 그리고 또다시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시작한다.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남자는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긴 후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시작했다.

"스톰 트루퍼 알아요?"

"그 스타워즈에서 하얀 깡통 쓴 군인들이요?"

"맞아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또 하나의 스톰 트루퍼가 되는 거예요. 그냥 똑같은 하나의 구성원이죠. 설정은 고도로 훈련받은 군인이지만, 실상에서는 총을 무지하게 쏘는 거 같은데 하나도 맞지 않죠. 그리고 너무나 쉽게 사라져 가죠. 그런 기분 같아요."

착착 감기는 듯한 그의 말에 여자는 맞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꽤나 비유가 좋은데요. 그럼 스톰 트루퍼의 사랑은 어땠어요?"

"사랑을 하면 스톰 트루퍼도 그 하얀 깡통을 벗어버려요. 그리고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느끼죠.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가 봐요."

남자는 식어버린 맥주를 한 모금 마셔본다. 아직 남아있는 씁쓸함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해본다.

"근데 왜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기 어려워해요? 전에도 잘 했잖아요."

"그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녀는 남아있는 맥주를 깨끗이 비우고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물 흐르듯이 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고 나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은 많아지는데, 묘하게 사람을 만나는 환경의 폭은 좁아지는 거예요. 그러니 방황만 하죠. 얘기만 통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망할 체크남방이 우리 할아버지 같아서 싫기도 하고 기분이 널 뛰듯 해요."

남자는 종업원을 불러 2잔을 더 주문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침착하다. 뭔가 침착하다.

"조급해하면 안 돼요. 지금까지 마음을 털어놓을만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었어요? 그 세월 동안 그 정도인 거예요. 그러니 사랑에 대해서도 조금만 시간을 줘요. 이 사람 참 성격 급하구먼. 날강도야. 날강도."

약간의 익살을 떤 남자는 새로 온 맥주 두 잔 중 한잔을 골라 그녀에게 건넨다. 총명한 날강도는 말을 이어간다.

"공감이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이더라고요.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가치관이 강해졌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바꿀 수는 없잖아요? 같이 맞장구를 쳐주면 좋은데, 어떤 사람은 훈계도 하고 누군가는 화를 내더라고요. 내 의견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나 뭐라나."

남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남자는 단순해요. 좋아하면 다 좋거든요. 근데 사회에 물들면 뭐랄까 그런 것들이 증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수컷이 되는 거죠. 비난할 수는 없어요. 그냥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야죠."

여자는 풀지 못한 퍼즐이라도 생긴 듯 답답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러니까 언제 나타난다는 거냐고요."

남자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어때요?"

"남자들은 이게 문제예요. 좀 마음을 터놓을만하면 고새를 못 참고 돌격해요. 공익 나왔잖아요. 돌격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이럴 땐 또 참 잘 해요."

남자는 갑작스럽게 어깨를 피며 말했다.

"공익을 무시하지 마요. 내가 복사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아이고. 유공자이시군요."

여자의 웃음에는 싫지만은 않은 듯한 기분이 흐르는 듯하다. 무리하게 펴진 남자의 어깨는 우스꽝스럽게 아직 그대로다.




얼마 전 만나 식사를 함께 했던 이 커플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우리는 셋이서 와인을 두병 정도 마셨는데 놀라운 점은 그들의 눈빛이었다. 글쎄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벌써 결혼 4년 차가 되어가는데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묘한 감정들이 담겨 있는 듯했다. 예전 같으면 염장을 지르는 거냐며 장난을 쳤을 나였지만, 이상하게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이런 눈빛을 우연히 Sting의 Live에서 본 적이 있었다. Chris Botti가 'My Funny Valentine'을 연주하는 순간이었다. 관객에는 마침 Sting의 아내인 Trudie Styler가 있었는데, Sting은 연주 중간에 불현듯 나타나 아내를 바라보며 노래를 한다. Sting의 진심과 익살스러움이 가득한 그의 노래 속에는 비슷한 눈빛들이 존재한다. Sting의 눈빛, 그의 아내가 노래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우리가 찾길 바라는 모든 것을 간단하게 요약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P.S) 친구 커플의 결혼 4주년을 축하합니다.


https://youtu.be/eryKY1 fhUlo

그 눈빛들을 볼 수 있는 그의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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