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푸근 Jan 21. 2017

공감이라는 시작에서

영화 <The invisible woman>과 헤일리




헤일리를 처음 만난 것은 추운 겨울 한 피자가게에서였다. 1시간 정도 늦은 그녀의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언젠가 있었던 나의 젊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내 친구 곰팡이의 후배이다. 곰팡이와 함께 석사과정을 이수중인 그녀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서 확립한 자신감이 적재적소에 담겨있었다. 누구보다 사회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지만, 동등한 위치에서는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은 성향도 가졌다. 젊은 날의 유시민을 보는 기분이랄까? 내가 신경 쓰이는 너의 관점에 대해 내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한 느낌. 기분 좋은 기상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성격은 완고함으로 완성되지만, 그녀에게는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와 곰팡이 그리고 헤일리는 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헤일리는 담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사회생활은 자신 있어요. 그런데 연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쉽게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냥 남에게 말하기에는 내가 쌓은 사회의 장벽이 무너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깊은 곳에서 그것들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어떻게 보면 제 마지막 보루 같은 사람인 거죠."

그 순간 나는 찰스 디킨스도 언젠가 같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비밀 같은 사랑은 2013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오늘은 그 영화와 함께 헤일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오랜 숙제인 공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 글에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였습니다.




The invisible woman, 2013



영화는 주인공인 찰스 디킨스 역과 감독을 동시에 맡은 랄프 파인즈에 의해서 주도된다. 당시에도 인기 작가였던 찰스 디킨스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많은 자식들을 통해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었고, 작가로서의 명성은 더 이상 다다를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중년의 시기에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요즘 한창 핫한 여배우인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넬리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자이다. 그녀는 찰스와의 몇몇 안 되는 대화를 통해 작가로서 의도와 세상에 대한 시선에 대해 공감을 이루어낸다. 놀란 것은 오히려 찰스였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연극배우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그의 모든 시선들이 공유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찰스 : (중략) 재밌는 것은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심오한 비밀과 미스터리의 존재로 여겨지죠. 

넬리 : 그 비밀을 다른 이에게 나누기 전까지는 그렇겠죠. 하지만 그것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는 거죠.


담담하게 받아내는 넬리의 말에 찰스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시대적으로 금지된 사랑의 시작. 나는 이것을 사랑보다 공감의 시작이라 부르고 싶었다.


그의 그 눈빛


랄프 파인즈는 누구보다도 깊은 눈빛을 가진 배우이다. 어쩌면 그에게 많은 대사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The nvisible woman>에서도 이 같은 눈빛으로 수많은 고민과 슬픔을 연기한다.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면서의 망설임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 후 넬리에게 줄 상처를 걱정하는 모습. 그런 그에게는 실제 부인이 존재한다. 그녀와 사이에서 수많은 자녀들이 생겼지만, 어쩐지 그는 아내와의 소통에서는 포기를 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두 도시의 이야기> 등 수많은 명작을 쏟아낸 작가였다. 그에게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심연의 공간이 있다. 그곳은 창작의 공간이자 본인을 완성시키는 장소이다. 그런 부분을 그의 아내는 알지 못한다. 그런 순간에 그는 그 비밀의 장소에서 문을 열어준 넬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더 깊은 내공을 보유한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넬리는 젊음과 깊이를 동시에 보유한 인물이다. 그녀는 배우지만 연기에는 별로 소질이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를 통해 찰스 디킨스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감성적인 공감을 통해 다가가는 그녀의 사랑은 그와의 나이 차이,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을 이겨내게 만든다. 눈에 뜨였던 장면은 찰스 디킨스와의 산책에 대한 장면들이었다. 찰스는 상당히 걸음이 빠르다. 그녀는 그와의 공감이 좋은 나머지 그의 발걸음을 맞춰 나간다. 그리고 함께 산책을 다닌다. 그것은 나중에 그녀의 취미이자 습관으로 남는데, 그 산책이란 오묘한 것이다. 그들에게 산책은 공감의 시작이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공감에 대한 추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의 실제 인물들


영화는 실제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클레어 토머린의 소설 <The invisible woman>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사랑하는 찰스 디킨스에 대한 이 같은 스토리는 한 때 BBC의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될 만큼 매력적인 만남을 담고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1870년에 사망한 그가 보여주는 고뇌에 대해서이다. 당시 저명한 작가라는 그에게도 공감이라는 주제는 어려운 문제였다. 어쩌면 우리도 같은 과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지켜내야 하는 방어본능이 존재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적응되면 가끔은 그 안의 내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진다. 무엇이 힘들다. 어떤 것이 그립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인연이다. 보통의 우리는 이성에게 그러한 기대를 걸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녹지 않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때로는 소망한다. 함께 공감을 이루는 사람. 죽기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 그 작은 어두운 곳을 함께 공유할 사람. 그것은 어렵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 영화가 좋아졌다.


그들의 공감 그리고 산책


시대를 넘나드는 고민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숙제일지도 모른다. 다른 세기의 작가가 겪은 고민과 사랑에서 우리는 현재의 자신을 보게 된다. 추운 겨울 만났던 헤일리의 고민들은 현재의 나와 너무 닮아있다. 나의 마지막을 공감해줄 사람을 찾는 과정, 자신의 마지막 보루이자 안식처가 되어줄 사람. 우리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도 순수한 그 기대감을 갖고 살아간다. 지극히 찰스 디킨스다운 사랑고백으로 오늘의 푸념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찰스 : 누군가에게는 항상 비밀이 존재하죠. 나의 비밀은 당신이오. 넬리.



헤일리의 다가올 사랑을 응원하며,




https://youtu.be/VGR_naUp3t4

Natalie Merchant, One fine day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눈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