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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Dec 23. 2022

어린이의 책 읽기와 어른의 책 읽기

지금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서 왜 맨날 책을 읽고 있어?"


며칠 전 아이가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호, 잘됐다. 드디어 아이의 독서와 어른의 독서가 어떻게 다른지, 달라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라고 말이죠. 


저는 엄마표 토론의 매개로 가장 흔한 독서 토론을 권장하지 않는 편입니다.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독서(특히 어린이의 독서!)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우선 개인의 경험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와 공식적인 '엄마표 토론' 수업을 시작했던 2018년, 저 역시 맨 처음 떠올린 게 '독서 토론'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는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책 읽기에  할애할 정도로 독서를 사랑하고 즐기는 아이었던 데다 저 또한 늘 아이가 읽은 책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죠. 


그런데 웬걸, 책을 매개로 한 대화는 그토록 즐거웠는데 독서 토론은 쉽지도 재밌지도 않은 겁니다.  토론할 책을 미리 정하고 알려준다는 것 외에는(심지어 이미 읽었던 책이었는데도 말이죠) 책을 중심에 둔 기존의 대화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도 그냥 책 읽기와 토론을 위한 책 읽기는 마음 가짐부터가 달랐던 거죠. 토론을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었던 저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질문들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야만 하는 부담이 컸고, 아이 역시 수업을 위한 책 읽기로 정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몇 번을 그렇게 진행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을 무렵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역시나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해서 재미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아차 싶었죠. 책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모두 좋아하는 저도 심지어 쉬운 어린이용 책이 그렇게 재밌게 읽히지 않았으니 아이라고 달랐을까요. 

그날로 독서 토론을 그만두고 평소 우리가 하던 대로 책 읽다가 말을 걸고, 재밌는 부분 공유하고, 책 추천도 해주고, 공통적으로 읽은 책에 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노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돌아왔어요. (* 대신 토론은 '뉴스'를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매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 체크하는 것을 일처럼 했던 저는 그날 읽은 재밌는 뉴스, 새로운 소식, 신기한 발견, 감동적인 사연 같은 것들을 아이에게 브리핑하듯 알려주고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걸 토론 방식으로 심화한 겁니다.) 


독서 토론을 그만두니 아이는 원래대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골라 읽고, 시리즈나 속편 등을 연달아 읽고, 읽은 책을 계속 반복해 읽는 등 저의 간섭이 전혀 없는 채로 재밌게 읽고 신나게 책과 놀았습니다. 제가 해줄 것이라곤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눈빛을 반짝거리며 '진짜 궁금해 죽겠다는 듯' 질문 세례를 퍼붓고 때론 그 이야기의 맥락과 연결된 다른 책, 같은 장르의 재밌는 책을 추천해주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몇 시간이고 책에 대한 이야기로 꽃 피울 수 있는 수준으로 책 대화가 재밌게 인식되도록 하는 것, 그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책 읽기 자체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어야 하는 거죠.(*만일 이런 방식으로 독서 토론이 잘 진행될 수만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그렇게 하고 계신 분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자세로든 책 읽기에 몰두하곤 합니다. (사진_어나더씽킹랩)


어린이의 독서는...


그렇습니다. 어린이의 독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재밌어서 읽고, 그래서 몇 번을 반복하고, 그걸 엄마와 아빠와 공유하고 싶어서 신나게 이야기해 주고, 아이의 얘기에 귀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부모의 태도가 있고, 그 태도를 보며 아이는 더 즐거워지고... 그렇게 책을 친구 삼아 크는 아이들은 자라는 내내 책 읽으라는 잔소리가 전혀 필요 없어집니다. 누구보다 본인이 책이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죠. 


저는 아이들의 독서야말로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줄 때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주는 기쁨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 즐거움과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만큼 책이 주는 행복과 위로, 지혜와 성찰은 측정 불가입니다. 내 아이가 그렇게 평생을 책을 반려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책 읽기는 무조건 즐거워야만 합니다. 


반면 어른의 독서는 어때야 할까요. 


이와 관련해 최재천 교수님의 책 일부를 소개합니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중략)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은 마음을 살살 건드리는 책 혹은 자기계발서입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읽고 성공했다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중략)
우리는 기획서를 작성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죠.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분야의 책을 공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중략)
독서량이 늘어날수록 완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접할 때, 전보다 덜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중략) 학문은 모두 연결되어 있잖아요.(중략)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중략)
어른이 배우고 훈련받을 곳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지금, 결국 책밖에 없어요.
취미 독서는 아예 깨끗이 잊으세요. 독서는 일입니다."

-<최재천의 공부> '3부 공부의 양분' 중에서-

이미지_픽사베이


한데 왜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을까요. 어릴 때 독서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때로는 '시켜서' 하는 것으로, 공부로 학습으로 인지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책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들이 더 재밌는 것들이 생겨나면 바로 책을 놓고 말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재미를 추구하는 '취미형' 독서를 하려고 합니다. 정작 다양한 분야의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세상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깨닫고 적용하고 습득해야 할 시기에 말이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가 아이에게 해준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너는 책을 왜 읽어? 
('재밌어서'라는 답을 할 줄 알고 물었고, 예상대로 답하더군요)
어릴 때는 엄마도 너처럼 책 읽는 게 그냥 재밌고 좋아서 했었어.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 달라졌지. 엄마한테 독서는 공부야.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잖아. 그런데 엄마는 지금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또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공부한 것들 중에도 업데이트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 책에는 모든 경험, 지식, 방법, 현명한 지혜까지 다 들어있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책을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어.
네가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공부를 성실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네가 책을 좋아하는 그 마음이 참 예뻐.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하면 어른이 된 후에
엄마처럼 공부로 독서해야 될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거야."


** 위 글은 필자가 운영 중인 토론교육 웹사이트 <어나더씽킹랩 anotherthinking.com>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전체 글은 '어린이의 책 읽기와 어른의 책 읽기...독서에 관해 지금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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