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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an 14. 2023

잠옷 차림으로 양자역학 논하며 시시덕거리기

핵심은 '시시덕거리기'입니다

주말 아침, 잠은 깼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아들 옆에 척 들러붙었습니다. 얼굴을 빤히 바라 보고 머리를 쓰담쓰담하며 주말 아침의 행복을 만끽 중이었는데, 아들이 묻더라고요.


"엄마, 나 배고파. 아침밥 언제 먹을 거야?"

"음, 조금만 더 뒹굴거리면 안 될까?"

"나 지금 밥 먹고 싶어."

"지금? 음... 지금이란 시간은... 지금도 지금이고 10분 후도 지금이고 1시간 뒤도 지금인데...? 생각해 봐. 10분 뒤엔 그때가 우리에게 '지금'이잖아."


웃음기 가득한 아들 얼굴을 보니 '엄마가 또 시작했구나', 하는 표정입니다.


"엄마 일어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좋아, 그럼 1분 이내에 나가자."

"1분 이내? 그것도 지금을 기준으로 한 1분 이내이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지금'이 언제를 말하는 거냐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시간으로부터 1분 이내를 말하는 거지. 엄마가 하는 말이 말이 안 되잖아."

"양자물리학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게 말이 된대. 말이 되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하고, 모두 다 '시적 허용' 같은 거지! 책에서 읽었는데 예를 들면 '변이 4개인 삼각형'이라던가 '10보다 작은데 10억보다 큰 숫자' 이런 걸 말하는 거야. 또 있어, 같은 10인데 같은 10이 아닌 거 같은..."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양자물리학 이야기는 빛과 색, 열에너지로 옮겨가 같은 에너지를 지닌 파란 불꽃과 빨란 불꽃의 비유, 그 빛의 입자를 탁구공과 대포알에 비유해 손에 쥔 사과를 떨어뜨리는 이야기(요즘 읽고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등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이상한 양자의 세계에 대해서 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론은 '과학의 세계는 너무 흥미로워!'로 끝났죠.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어요. 그저 아이와 '말장난'으로 아침에 아이를 좀 웃겨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것도 있어요. 내가 언제까지 아이가 잠든 침대 옆으로 기어들어가 얼굴을 부비부비하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이토록 평온하고 충만한 아침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올해 만으로 13세가 될 아이가 15세가 되고 17세가 되어도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욕심만을 앞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그 시절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엄마가 된 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아깝게 생각하고 즐기자'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습니다. 아이가 더없이 까칠하고 예민한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절을 무난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각 덕분이었죠. 요즘은 '금방 지나간다' 정도가 아니라 진짜 빛의 속도라는 생각에 하루 한 시간이 얼마나 아깝고 소중한지 모르겠어요. 

남동생 부부가 3월에 초등학교 입학하는 조카를 두고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하고 복잡한 심경을 내비칠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내년엔 더 아쉽고 3년 뒤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쉽고 7년 뒤에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아쉬울 거라고, 늘 후회하게 될 것이란 점은 명백한 사실이니 지금의 육아를 즐기라고! 


어쨌든 어떻게든 웃게 해 보려고 시작한 멘트가 이어지고 이어져 양자물리학까지 가면서 결과적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고 시공간을 초월해 여러 시간대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 가능한 '나'의 이야기를 말해주며 즐거워하던 아이가(그때 제가 '와, 그게 양자물리학이야!'라면서 대꾸를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아침 엄마의 '시적 허용'같은 대화로 한번 더 호기심이 반짝하는 순간을 만났으니까요.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인 '잠옷 차림으로 양자역학 논하며 시시덕거리기'에서 제가 방점을 찍고 싶은 단어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시시덕거리기'입니다. 아이와 시시덕거리는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아이와 목적 있는 대화를 하려고 하면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시덕거리면서 슬쩍슬쩍 최근에 겪은 이야기, 보았던 글 또는 책, 어디서 들은 이야기 등을 하다 보면 오늘 아침과 같이 뜻하지 않게 호기심도 자극하고 생각할 틈을 만들어주는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는 거죠.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아이와 같이 시시덕거릴 수 있을 때, 아이가 받아줄 때 우리는 그 순간들을 많이 즐겨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어요, 빛의 속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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