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나더씽킹 May 05. 2023

행복해야 할 아이들,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아이의 자유를 사랑한 엄마의 결론

오늘은 101주년 어린이날입니다. 

매년 어린이날마다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내용의 뉴스가 각종 통계와 함께 제시될 때마다 마음이 아픈데, 이번 어린이날도 여지없더군요. 아이들의 행복을 더 많이 바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때에 이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그러던 중 박노해 시인이 지난해 내놓은 <아이들은 놀라워라>의 서문을 보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되네요. 


아이는 부모의 몸을 타고 여기 왔으나

온 우주를 머금은 장엄한 존재이다.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고,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갈지.


우리가 할 단 하나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존재의 광활함'을 허용하는 일이다.

결여 속에 살아나는 간절함과 강인함, 

순수한 우정과 모험, 시련과 상처까지, 

그러니까 자유, 자유의 공기 말이다. 

(......)


언제까지나 네 마음 깊은 곳에

하늘 빛과 힘이 끊이지 않기를,

네가 여기 와주어 감사하다. 사랑한다. 


저는 아이의 자유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은 엄마입니다. 

이 서문 글을 읽다가 지난해 10월,  <어나더씽킹랩>에서 이미 발행한 바 있는 '아이의 자유를 사랑한 엄마의 결론'을 여러분들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에 붙입니다. 유료 독자들을 위한 글이라 모두에게 오픈하지 않았지만, 7개월이 지났으니 유료 독자분들도 양해해 주실 테죠. 




아들 : "엄마, 나 이번 가을 방학에 에스페란토(Esperanto) 하는 거 말고 유니티도 배워볼래."  

나 : "응? 유디티(UDT)? 그거 특수 군대 말하는 거?" 

아들 : "아니, 유니티(Unity), 게임 개발 엔진이야." 

나 : "엔진을 왜 배워? 엔진은 그냥 장착해서 돌아가는 거 아니야?" 

아들 : "게임 개발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엔진을 배워야 돼. 소프트웨어야." 

나 : "아, 너 로블록스로 개발하잖아. 그거랑 달라?" 

아들 : "로블록스 코딩은 로블록스 플랫폼에서만 가능한 거고, 유니티는 일반적인 엔진이야. 제일 많이 써." 

나 : "그렇구나, 그런데 혼자 배울 수가 있어?" 

아들 : "응, 튜토리알이 꽤 많아. 그거 보고 혼자 하면 돼. 그런데 그거 하려면 C# 언어를 배워야 돼." 

나 : "그렇구나. 그런데 이번 방학에 CTS(Christmas Talent Show)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어? 할 게 진짜 많구나. 엄마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오늘 아침 등굣길, 아이와 나눈 대화입니다. 


얼마 전, 한글날 즈음에 언어 관련한 '한 줄 토론'을 올렸던 대로 아이와도 언어에 대해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날 이후 아이가 실제로 에스페란토(Esperanto)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에스페란토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국제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입니다.)


어플을 깔고 하루도 빼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아침에 그랬거든요. '10월만 지나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 같다'고요. 그 말끝에 "에스페란토 말고 유니티도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나왔던 겁니다. 


아이는 혼자 하는 게 많습니다. 점 하나로 시작한 일이 점점 확장되고 확장되면서 자기만의 원을 그려가고 있죠.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온전히 '흥미'와 '재미'입니다. 하다 보니 그 옆에 있던 것도 재밌어 보이고, 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하다 보면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것에도 도전하고 싶어지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다니고 운동 하나 하는 것 외에는 온통 자기 시간이니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면서 시도하게 되고, 그러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제가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는 것보다 훨씬 잘해가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듬뿍 쏟아내면서 가끔 필요한 게 있는지 도와줄 게 있는지 물어봐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보세요, 오늘 대화에서만 해도 저는 '유니티(Unity)'를 UDT로 알아 들었으니 말 다했죠.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는 분들이 자녀 교육의 핵심으로 꼽는 것이 바로 이 '자유'입니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은 늘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앞세우고 부모가 뒤에 갑니다. 선택은 네가 해라. 자유는 선택의 기회를 갖는 거니까.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러면서 말입니다."


최재천 교수님도 비슷한 맥락의 말씀을 하셨었죠. 


"부모는 아이에게 긴 목줄을 걸어 놓아야 해요. 긴 줄로 묶어 놓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다가 아주 위험할 때는 낚아채야 해요. 곁눈으로 계속 살피다가 진짜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뛰어들어야 해요. 그전까지는 꾹 참아야 해요."  

-채널 예스 24 인터뷰 중.


막상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들이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는 자유 시간이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고.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거나 자유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내 짜인 스케줄대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면 당연히 혼란스럽죠. 한국 사회의 어른들이 제대로 '잘 놀아본' 경험이 없어 오직 술과 리모컨 돌리기로 자유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유도 누려본 아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습'이 아닌 본능적으로 겪고 자란 아이가 자유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위에서 김형석 교수님이나 최재천 교수님이 말씀하신 '자유'의 맥락이란 아마도 그 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별히 부모가 개입해야 할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엄마 아빠가 나의 자유를 사랑하는구나, 존중해 주는구나' 하고 깨닫는 아이는 긴 목줄을 '낚아채는' 순간에도 순순히 응합니다. 사랑으로 자유를 허용한 것처럼 사랑으로 끈을 조이는 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우리 집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지루함'의 형태로 자유를 누렸습니다.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선행 학습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었거든요. 상대적으로 '지루한 시간'이 많았던 겁니다. 이 시간 동안 아이는 '뭐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 시간을 '여백의 미'라고 부릅니다. 그 여백은 아이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새로운 호기심을 싹 틔우고 즐거운 일을 찾아 나갔습니다. 부모가 '이건 어때?' 혹은 '그런 것도 있잖아' 하고 툭 던져줄 수는 있었지만 시도하지 않거나 그만두거나 더 나아가거나 하는 건 모두 아이의 결정이었습니다.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면 그때부터는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지루함이 창의력을 만든다'는 말처럼 여백의 시간이 만들어낸 창조적 아이디어들이 아이의 시간을 꽉 채워주었죠. 


책을 읽다가 직접 스토리를 구상해 책을 써보기도 했고, 웃긴 그림에 꽂혀서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도 여려 권 만들었습니다. 6살 때 본인 선택으로 피아노를 하다 보니 즉흥곡을 연주하고 작곡에도 눈을 뜨게 됐죠. 코딩을 배우고 그 세계에 흠뻑 빠져든 후로는 코딩을 중심으로 한 활동들이 많습니다. 게임 개발을 하고, 친구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재능 기부도 하고, 오늘 아침 대화처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것까지 본인이 결정하고 실행하죠. 지금은 아예 대학 진로가 '음악'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바뀌었을 정도입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네 가족과 어쩌다 보니 매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게 되면서 친구, 친구 동생과 함께 벌써 4년째 크리스마스 콘서트 쇼, 일명 CTS 공연도 하고 있습니다. 보통 가을께 자기들끼리 온라인으로 회의하고 프로그램 짜서 각자 분야를 연습하고, 공연 스크립트를 쓰고 무대 장치를 만들고 심지어 티켓 디자인이며 경품 추첨 코너도 준비합니다. 이 모든 것엔 당연히 어른의 의견은 1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나서 깔깔 대면서 준비하고 연습하고 본 무대에 섭니다. 


지루함으로 시작한 자유 시간은 이제 할 일이 너무 많아져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시기에는 어떤 일이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작곡을 못하는 시기도 있고, 코딩을 가르치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도 한참을 못했습니다. 가끔 팬의 입장에서 "신곡은 언제 나오니?"라고 물으면 "엄마, 내가 진짜 할 일이 너무 많아."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 말이 사실이란 걸 너무 잘 아는 저로서는 반박을 할 수가 없죠. 


만일 이 모든 것들을 시켜서 했다면 아이는 일찌감치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거예요. 아니 애초에 그렇게 시키지도 못했겠지요. 물론 자유를 누리다 못해 균형이 깨지는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땐 저 역시 '긴 목줄'을 잡아당깁니다. 자유롭게 놓아준다고 '방종'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아이를 아는 분들은 어쩌다 '타고난 재능이 많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알아요. 결코 '타고나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즐겁고 행복해서 '열심히 다한 결과'라는 것을요. 


무엇이든 스스로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부모가 좀 더 적극 개입해 방법을 찾아주거나 빠른 길로 안내할 수도 있겠지만 자발적으로 해왔기에 흥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단 점을 잘 아는 저로서는 '스스로의 힘'을 절대 지지합니다. 


물론 지금 푹 빠져 있는 것들도 어느 순간 즐거움을 잃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언제든 다시 지루한 시간을 겪게 되겠지만 그 '자유'의 시간이 아이에게 또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란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쌓여 아이는 마침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게 되겠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