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은 다들 사춘기를 걱정하는데 저는 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아이는 여전히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남자아이 같지 않게 애교도 많고 재잘재잘 말도 잘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직은' 좋아합니다. 자기 방안에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늘었고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좋아하는 선수에 대해 검색하거나 관련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어요.
뭐, 다른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을 테고,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와 성취감을 가진 아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 또한 큰 불안감의 원인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쩔 때는 잔소리를 참을 수 없는 때가 있는데요, 가능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지금 너의 생활 패턴이 어떤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요, 며칠 전부터 제 마음을 괴롭히는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지난 주말 결혼식장에 다녀오면서부터입니다. 식사를 하는 중에 아이가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참으로 유치한 얘기지만 아이는 결혼식은 관심 없고 '뷔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결혼식에 따라나선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갈비탕'이 메뉴로 나온 것이었죠.
실은 저도 잘 모르는 남편 친척의 결혼식이기도 했고, 가고 싶지 않아 하는 아이 마음 역시 이해할 수 있었기에, 기대와 다른 메뉴에 좀 더 짜증이 났을 수 있겠다 생각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이 이어지니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함께 식사 중이었던 시댁 가족들 보기도 좀 민망하고요. 가만 보니 남편도 표정이 밝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자"라고 꾹 눌러 말하는 남편에게 아이가 "아빠,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어"라고 받아칠 때는 살짝 조마조마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날 돌아와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남편이 말하더군요. 결혼식장에서 만난 우리 아이 또래들을 보면 다들 너무나 의젓하던데 우리 애가 너무 애기인 것 같다고. 어릴 때는 어디 가서 의젓하다는 소리를 듣던 애가 점점 크면서 더 아이처럼 구는 것 같다고.
그런데 문제는요, 그다음부터였어요. 그전에는 귀엽다고만 여겼던 아이의 모든 행동이 '너무 애기짓'으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말투나 행동에서 '예의'를 따지고 있고, 심지어 '이제 저 나이쯤이면 슬슬 고민도 많아지고 안으로 더 성숙해져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다 '내가 뭔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자기반성에까지 이르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아침에는 아이에게 현재 엄마의 고민과 마음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반발은 하지 않았고 엄마 말을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왜 이렇게 불편하죠? 저는 여전히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엔 내가 답할 차례였습니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드는 고민과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대응으로 끝나버리는 게 문제지 '앞으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봐요. 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모의 관찰과 조언과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들이잖아요. 지금 부모님 입장에선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 정도의 고민과 걱정, 때로는 불편한 감정도 겪지 않고 키우겠다는 건 과한 욕심 아닐까요?
누구도 완벽할 수 없어요. 자라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죠. 내 아이가 안에선 귀엽고 사랑스럽고 밖에선 누구보다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존재이길 바라는 건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에요. 아이가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왜 부족한 부분만 확대해서 보고 있나요? 남들은 아이들이 자꾸만 자기 세계 안으로 숨어들고 차츰 부모와 거리 두리를 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걱정하는데 오히려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물론 아이에게 예의와 태도를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겠죠. 아이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지금의 상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세요. 좋은 점만 보라거나 합리화를 하라는 게 아니에요. 훌륭한 점은 훌륭한 대로 모자란 점은 모자란 대로 정확히 바라보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대응하라는 얘기죠. 부모가 아이의 부족만 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파고들면 아이도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지혜를 발휘하세요."
네, 제 이야기입니다. 질문한 것도 답한 것도 저입니다. 고백한 대로 며칠 내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다가 아침에 처방으로 떠올린 책이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란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입니다. 전에 밑줄 그었던 부분들을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지금의 상태를, 내 마음을 '객관화'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다 맞는 건 아니잖아요.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답이 찾아지더라고요.
이렇게 또 문장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오늘의 나는 더 괜찮아집니다.
<나에게 주는 오늘의 문장 처방>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타고난 초능력을 간과한 채로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에 의심을 품으며 조금은 거리를 두거나 우스갯거리 삼아 가볍게 접근한다면 자기답게 살아가기가 무한히 쉬워지는데 말이지요. (...)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못하고 다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가 되어 수시로 상처받습니다. (...) 제 상처에 신경 쓰느라 지혜로운 선택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