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어린이 '해방'을 생각하며
오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연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지만 부모님들에게는 머리 좀 아픈 날이죠. 어떻게 하면 이날을 좀 더 특별하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한 이벤트와 선물 등 고민이 많습니다.
한데 올해 어린이날은 한 가지 '깊은 고민'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어린이날 101주년,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인데요, 단지 어린이들이 행복한 날,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라는 의미를 넘어 '어린이 해방'에 방점을 찍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날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어린이운동'의 아이콘과 같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주축이 된 '색동회'가 1922년 처음으로 지정한 날이죠. 방정환 선생님은 독립운동가, 작가이기도 했는데요, 어린이날 지정으로 대표되는 '어린이운동' 또한 독립운동과 맥락을 함께 합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도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 일환으로 어린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방정환 선생님의 뜻이었습니다.
처음 어린이날로 지정된 당시는 5월 1일이었지만, 이후 1927년 노동절과 겹치면서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했고, 이후 1939년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어린이해방선언'은 어린이날이 지정된 다음 해인 1923년입니다. 방정환 선생님 등이 결성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그해 5월 1일 '소년운동의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선언으로 다음과 같은 3개의 조항으로 돼 있었습니다.
첫째,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둘째,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셋째,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여러 형태)의 가정 또한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이처럼 '해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앞서도 말했듯 독립운동의 맥락에서 민족 해방 운동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때문에 '소년운동의 선언'이 현재 '어린이해방선언'으로 전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의미의 '해방'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사전적 정의를 보면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로 보면 이 시대의 '어린이 해방'은 어떤 모습이라야 할까요.
이쯤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9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등장한 '방구뽕' 씨가 주인공인데요, 극 중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을 자처하는 그는 학원 버스를 탈취, 학원이 끝날 때까지 외출이 금지된 일명 ‘자물쇠 반’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가 '어린이 해방군 입대식'을 합니다.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되는 그는 감형도 거절하고 끝까지 '어린이 해방' 신념을 외치는데 최후 진술에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내내 화제가 됐었죠.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면서 지금 당장의 아이들의 마음과 행복을 보살피지 않는 어른들의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어떤 부모도 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른 데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에게 행복은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성취와 연결되는 문제지만 아이들에게 행복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 안전과 건강, 즐거운 놀이와 자유 등에서 얻어지는 감정인 것이죠.
다시 말해 어른들 입장에서는 '나중의 더 큰 성취와 오래도록 만족하는 삶'을 준비하기 위해 어느 정도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유예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 씨가 외친 것처럼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겁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그러나 어른인 우리 역시 어린이 시절을 지나왔고 그때 우리의 감정을 돌아본다면 좀 더 심플한 결론이 가능해집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어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명확해지고요.
그 시작은 어린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 그리고 행복한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 목소리와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어야 할 겁니다. '어린이날 101주년,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을 맞아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방정환 선생님이 말했듯 어린이를 하나의 완벽한 독립체,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대화 말입니다.
<오늘의 질문>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tip) 참고로, 질문을 변형해서 다양한 대화도 가능하겠죠?
Q.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나라가 많지만 '없는' 나라도 있어. 영국이 대표적인데 1년 365일이 어린이날이라서 그렇대. 우리처럼 일 년에 하루 어린이날이 있는 게 좋을까, 아니면 일 년 내내 어린이날이라는 영국이 더 좋을까?"
Q. "부모님이 계시지 않거나 챙겨줄 가족이 없는 어린이는 오히려 '어린이날' 더 슬프지 않을까?"
Q.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Q.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세상의 기준과 어른들의 기준은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