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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pr 04. 2023

얼룩말 '세로'가 던진 묵직한 질문

동물원을 다시 생각해볼 때

      

세로를 기억하시나요.


지난 3월 23일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얼룩말 세로 말입니다. 서울 도심의 차도와 주택가를 3시간 여 동안 활보하다가 다시 붙잡혀 동물원으로 돌아간 세로. 사람들이 찍어 올린 사진과 영상 등이 공개되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세로는 이후 동물원의 스타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세로를 보기 위한 많은 관람객들이 동물원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더군요. 세로를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들,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와봤다는 사람들... 보도된 많은 뉴스를 보니 반응도 갈리더라고요. 얌전한 세로를 보고 '집 나간 걸 반성 중인 것 같다'는 시민의 목소리도 있었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된다'는 반응도 있었고, '외로워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도심을 활보할 때보다 훨씬 안전한 건 분명한데 다시 동물원 울타리 안에서 서성이는 세로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세간의 관심이 세로에게 또 어떤 스트레스로 작용할지 걱정도 되었고요. 동물원에서 더 신경을 쓰고 있고, 또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도하는데 정말 괜찮은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탈출 전이나 지금이나 세로 입장에서는 가장 힘들었던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게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다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로에게 마음이 쓰이고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는 세로의 아픈 사연 때문입니다. 2019년생 수컷 그랜트 얼룩말인 세로는 2021년에는 엄마 '루루'를,  지난해에는 아빠 '가로'를 차례로 잃고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옆집 사는 캥거루와도 다툼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단순히 몇 시간의 탈출극이라는 재밌는 해프닝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거죠. 동물원 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동물원 환경 재정비와 함께 늦어도 내년까지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겠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커진 만큼 아마도 동물원 측은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로 입장에서 당장의 관심이 버거울지 모르겠으나 얻은 것도 있었던 탈출이었던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부모가 된 후 아이들에 대한 아프고 힘들고 슬픈 사연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세로의 사연을 접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의 감정이 들더군요. 동물이지만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이 무리는커녕 유일한 가족이었던 부모를 모두 떠나보내고 방사장에서 혼자 지내온 시간들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세로도 세로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마 세로의 부모인 루루와 가로도 홀로 동물원 안에서 지내야 할 세로 걱정에 편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 같더라고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언론에서는 단지 해프닝으로만 다루지 않고 동물원에 대한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거나, 아예 동물원의 존폐 자체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거나, 진정한 동물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식의 다양한 분석과 여론 기사 등이 실렸습니다. (그중에서 눈에 띈 뉴스는  <"얼룩말 세로야 미안해"…그들이 동물원에 가지않는 이유>였습니다. 일독해보시면 유익합니다.)




실은 저 역시 세로의 일이 있은 후 '동물원이 꼭 필요할까?'에 대해서 아이들과 깊고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저 역시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주려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 동물원이었는데, 좀 더 나이가 들고 더 성숙해지면서 줄곧 그런 질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특히 동물들에 대한 학대나 동물원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 등이 드러날 때면 질문의 강도는 더 세졌지요.)


다른 때라면 몰라도 세로의 사연으로 시작한 이 질문의 끝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물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들을 내더라고요. 동물원의 모든 동물이 세로 같은 슬픈 사연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텐데도 '일반화'해버리는 오류는 분명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야생 동물들이 '갇혀' 지낸다는 문제의식을 하게 된 것 같았어요. 물론 '동물원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맞습니다. 동물원의 순기능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동물을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야생의 환경보다 훨씬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겠죠. 특히 후자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동물원 자체를 당장 없애고 모든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이미 동물원이라는 환경에 익숙해져서 넓은 초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야생의 동물들처럼은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극단적으로 이분법 화해서 동물원의 존폐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굉장히 묵직했다고 생각합니다.




동화 <긴긴밤>에는 주인공인 코뿔소 노든과 함께 여정을 함께 하는 펭귄 '치쿠'가 나옵니다. 치쿠는 누구의 알인지도 모를 점박이 알을 역시 펭귄인 윔보와 함께 품다가 동물원에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알을 데리고 동물원을 탈출하게 됩니다. 윔보는 떨어진 폭탄을 피하지 못해 죽고 마는데, 치쿠는 양동이에 알을 담아 입에 물고 노든과 함께 바다를 찾아 떠납니다.


그런데요,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펭귄 치쿠는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난 바다가 어떤 곳일지 상상이 안 가."라고 말하는 노든에게 아는 척해보지만 실은 새로 들어온 펭귄에게 들었을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게 될 생명에게 바다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한 번 도 본 적이 없는 파란 바다를, 오직 '정어리 냄새랑 비슷한' 바다 냄새로 추정되는 '그 무언가'를 감각적으로 느끼며 험난한 길을 가게 되죠.



세로의 사연에서 저는 <긴긴밤>의 치쿠를 떠올렸어요. 동물원에서 태어난 세로 역시 넓은 초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겠지요. 아니 언젠가 보게 될 날이 있기는 있을까요. 치쿠처럼 세로도 초원이라는 곳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는 할까요. 무리들 틈에 끼어 초원을 활보하는 세로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죠?


"동물원이 꼭 필요할까"라는 질문 그 이상, 세로와 같이 어쩔 수 없이 동물원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림 설명_이미지 생성 AI 프로그램 달리2(Dalle2)를 이용해 초원 위에서 함께 행복한 세로네 가족들을 상상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이미지에 써넣은 메시지처럼 세로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제작_DALL-E 2, 어나더씽킹랩)



**이 글은 필자가 운영하는 토론교육 웹사이트 <어나더씽킹랩 anotherthinking.com 에 실린 한줄 토론 콘텐츠 '오늘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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