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토론 학습 튜터로 활용하는 방법
글로벌 IT 기업에서 오랫동안 개발자로, 책임자로 일해온 지인이 3~4년 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동료가 요즘 잘하는 농담이 있는데요, AI에게 밉보일 만한 흔적을 남겨두지 말래요. 앞으로는 AI에게 잘 보여야 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어딘가에 AI를 칭찬하는 댓글이라도 남겨 놓으라고 하더라고요. 'AI 파이팅!' 뭐 이런 식으로요.(웃음)"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저도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요즘 그때 나눴던, '오로지 농담'이라고 받아들였던 그 대화가 자주 생각납니다.
일각에서는 AI의 놀라운 발전 속도에 대해 감탄하고 흥분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그보다 더 큰 크기의 걱정과 불안이 넘쳐 납니다. 어떤 전문가가 나와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라고 말하면 기대감이 커졌다가도, 공신력 있는 누군가가 그 위험성을 말하고 나서면 또 불안해집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AI의 위험성을 알리겠다"며 구글에 사표를 낸 딥 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가 "그간의 연구를 후회한다"라고 말했을 때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기회론자들과 위기론자들은 극명하게 대치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모두 공통적인 사실에 기반합니다. 'AI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세상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탄생을 가능케 한 장본인인 제프리 힌턴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소수의 학자들만 AI가 실제 사람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본인도 그랬다"면서 "(AI가 인간을 따라잡는 데) 최소 30년에서 50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죠.
2010년 이후로 태어난 아이들, 즉 알파세대는 현실보다 디지털 세상을 '고향'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한동안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21세기의 아이들을 여전히 20세기의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인공지능이 활성화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20세기 방식'은 마치 19세기와 21세기의 차이만큼 더 간극이 크게 느껴질 겁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이제 더는 물러설 데 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절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AI대한 감시와 규제, 윤리 같은 측면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되 동시에 내 삶에 끌어다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겁니다.
이미 영어학습에서는 챗GPT를 활용하는 학습법이 빠르게 확산 중인데요, 토론 역시 챗GPT와 같은 AI 챗봇을 '튜터'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 언어적 부분에 대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겠죠? 대부분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영어를 기반으로 한 만큼 영어 공부는 몰라도 우리말로 하는 '토론'이 가능할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영어로 아무 문제 없이 능숙하게 토론이 가능하다 하는 분들은 예외로 하고, 인공지능을 토론 학습에 이용할 때는 '번역기' 사용을 권합니다.
물론 번역기를 사용했을 때 오차는 분명 존재합니다. 내가 한 말이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AI챗봇의 답변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문장과 문맥 상의 오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토론을 위한 연습이자 훈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활용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미 많은 번역 프로그램이 상용화되었습니다만 딥엘(DeepL)을 추천합니다. 2017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사용 돼온 독일 기반의 프로그램으로 딥엘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기계 번역기'를 자처할 정도로 정교함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간 한국어 서비스가 되지 않았는데 올해 초 드디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죠.
이제 언어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어떤 방식으로 챗GPT를 토론 학습에 이용할 수 있을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도 챗GPT를 기반으로 하지만 주로 짧은 대화에 더 적합하다는 측면에서 챗GPT가 토론 학습에는 적합합니다.)
1. 질문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 상대로 활용
질문하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 이전에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필수를 넘어 절대적인 시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챗GPT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직업인 '프롬프트 엔지니어'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인공지능에게 알맞은 질문과 지시를 텍스트로 내리는 방식이 바로 프롬프트인데, 이 프롬프트가 더 정교하고 정확할수록 인공지능이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중요해지고 있는 겁니다.
토론에서도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토론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대며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지만, 이때 상대방의 허점이나 오류를 지적하고 더 깊이 파고드는 '질문의 힘'은 아주 중요합니다. 찬성과 반대의 형식을 갖춘 토론이 아니라 '혼자 하는 토론'이라 하더라도 '이런 주장은 무엇이 문제일까' '어떤 오류가 있을까' '이 근거의 약점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고 질문을 떠올려보는 일은 논리력을 키우고 생각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우선, 최근에 이슈가 됐던 내용이나 혹은 평소 관심 있던 분야를 '대화' 토픽으로 정하고 그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부터 하나씩 풀어가 보는 방식으로 진행해 보세요. 기억할 점은 챗GPT에게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아, 그렇구나' 하고 끝나는 질문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정보가 아닌 가능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나 '나의 의견에 대한 피드백'을 묻는 질문을 많이 해보세요. 챗GPT는 의견도 생각도 없는 AI이지만 '의견이 없습니다'라는 전제를 깔면서도 답변을 해줍니다. 정보가 아닌 의견이 오가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 확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챗GPT의 답변 중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질문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질문을 떠올리는 것이 훨씬 편해지게 될 겁니다.
2 토론 주제 선정에 대한 도움
그래도 무엇으로 토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예 감이 안 잡힌다면 본인의 관심사, 분야 등에 대해 언급하고 초보자용 토론 논제 자체를 도움 받을 수도 있습니다. 챗GPT는 방대한 데이터와 지식을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초등학생 어린이용 토론 주제, 청소년 대상 토론 주제 등 연령대를 제시하고 적절한 토론 주제를 제시해 달라고 해도 됩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논쟁해 온 지극히 고전적인 토론 주제나 지금 현시대에 반드시 논의해 보면 좋을 주제도 챗GPT가 알려줄 수 있죠.
단, 챗GPT는 교과서 같은 데가 있습니다. 신박하고 창의적인 주제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토론 초보자로서 대중적이고 기본적인 논제부터 접근해보고 싶다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다양한 실전 토론 경험 쌓기
챗GPT를 토론 튜터로 활용하는 최적의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챗GPT와 찬반 역할을 나누고 직접 토론을 해보는 것입니다. 토론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릅니다.
3-1. 토론 상황을 설정하고 논제 의논하기_챗GPT는 기본적으로 질문에 답을 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질문을 던지면 한쪽 입장을 견지하기보다 균형적인 중간자적 입장을 취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토론을 하기로 상황 설정을 알려준 뒤 논제를 공유하면 됩니다. 토론 논제는 미리 정해도 좋고, 챗GPT에게 물어도 좋겠고요.
3-2. 찬반 역할 정하고 입론부터 시작하기_논제에 대해 누가 찬성을 할지 반대를 할지 결정합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본인이 먼저 편한 입장을 맡고 반대 측은 챗GPT에게 하게 하세요. 입론-반론-최종 변론 같은 토론의 형식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만, 처음엔 아니더라도 서서히 형식을 갖춰서 발언하는 것도 해보면 좋습니다. 반론을 펼치는 부분에서는 단순히 입장 표명만 하지 말고 앞서 말했던 '질문 연습'이 함께 될 수 있도록 챗GPT의 답변에 더 구체적인 근거를 요청하거나, 허점이나 오류에 대해 지적하거나, 챗GPT가 놓치고 있는 틈새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반론을 이끌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3-3. 찬반 역할 바꿔서 같은 논제로 한 번 더 토론하기_일상 토론에서도 찬반 역할을 바꾸어 보는 것은 상대편 입장을 헤아리고 생각의 균형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요, 이 부분을 챗GPT를 상대로도 훈련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토론했던 논제로 역할을 바꾸면 앞서 챗GPT가 주장했던 근거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요, 반대로 입장이 바뀐 챗GPT가 어떤 근거와 논리를 펼치는지를 보며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3-4. 토론에 대해 평가 요청하기_토론이 끝난 후에는 토론에 대한 평가를 요청해 보세요. 특히 인간 토론자인 '나'의 주장과 근거들은 어떠했는지, 어떤 점이 강점이었고 개선할 부분은 무엇인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 어떤가요. 막상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절차가 복잡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은 제가 늘 주장하는 것처럼 토론의 시작은 대화입니다. 아주 똑똑한 대화 상대, 그것도 언제든 말 걸고 질문할 수 있는 대화 상대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수시로 여러 문제에 대해 챗GPT를 활용해 다양한 대화 연습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훌륭한 튜터가 생겼는데 활용하지 않으면 우리만 손해입니다.
한 가지 추가적인 팁을 드리자면, 오늘은 챗GPT를 활용하는 토론 학습법을 이야기했지만, 캐릭터 AI(character.ai)를 이용해 특정 상대를 골라 그 인물의 특성에 맞는 주제로 대화해 보는 것도 경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캐릭터 AI에서는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들부터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같은 유명 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골라 대화할 수 있는데요, 당연히 데이터나 정보력 등은 챗GPT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만, 그 인물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적절한 논제를 고른다면 재밌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토론 수업을 진행 중인 아이들에게 캐릭터 AI에서 인물을 골라 '토론하기' 숙제를 내주기도 하는데요, 이때 아이들이 그 인물을 선택한 이유, 그 인물과 나눠볼 논제로 어떤 이슈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했는지를 보면 꽤나 흥미로울 때가 많습니다.
** 커버 이미지는 이미지 생성 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로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