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주식 시장 동향을 보고 있던 터였다. 시차 때문에, 한국 주식시장 개장 및 폐장 시장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기 어려운 나는 보통 그날 장이 끝난 후에야 상황 파악을 하곤 한다. 어쩌다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거래'를 해야 하니까.
솔직히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주식 시장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그다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살았다. 10년 여 가까이 주식 투자를 해오는 동안 남들이 알만한 종목부터 거의 모를 종목까지 다양한 종목에서 이런저런 달고 쓴 경험을 했지만, 현재 포트폴리오가 거의 안정적인 종목들로 구성돼 있는 데는 그런 배경도 있다. 크게 오르지 않지만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 대형 종목들로 꾸리면 하루하루 시장 상황 들여다보느라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예전처럼 사고팔고를 원활히 하지 않다 보니 약간 방치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올 해는 상황이 좀 달랐다. 한국에 돌아가는 이슈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올 초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주식 시장이 '박살'났을 때는 며칠 동안 한국 시장 개장에 맞춰 일어나 잠 못 자가며 고민하고 필요한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하고 후회를 하거나 안도를 하며 지냈었다. 결국 '바닥' 판단에 실패해 눈물을 머금어야 했지만, 그나마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던 대형주 위주의 포트폴리오 덕분에 손실이 아닌 이익이 줄어든 것뿐이라는 게 위로라면 위로. 물론 그렇게 합리화하기엔 그 차액이 너무나 컸지만.
차트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집 안에서 주식에 대한 대화도 많아졌다. 어릴 때부터 경제 교육을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아이가 8살 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용돈 기입장을 쓰게 하고 내가 읽은 이런저런 경제 뉴스를 공유하는 것으로 꾸준히 관심을 유도해왔다. 주식 이야기도 그중 하나. 주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 개념부터 내가 투자 중인 종목들을 선택한 이유, 주식 시장 주요 이슈나 초고수들의 이야기까지 아이가 흥미로워할 한 것들을 틈나면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시총이니 영업이익이니, ROE, PER, PBR 하는 것들은 매번 새로 이야기해줘야 하지만, 어쨌든 개념에 대해 명확히 알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올해 아이 통장을 깨서 아이 앞으로 약간의 주식(나름 미래형이라 판단한 안정 종목)을 산 뒤로는 '어떻게 되어가느냐'라고 묻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날 주식장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체크하다가 종목 토론방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있었다. 예전에는 토론방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 아니었어서 이렇다 할 기억이 없지만, 때때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것 같다. 미처 놓치고 있던 뉴스나 공시를 공유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가끔은 치밀한 분석글도 보곤 했다. 아무래도 해당 종목의 투자자들은 그 기업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토론방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올해 초 주식 시장이 미친 듯이 변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투자자들의 의견이나 정보 등이 정말로 필요했다. 종목 토론방에 자주 들락거리게 된 건 그래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내가 들어가 본 모든 종목 토론방의 99%는 부정적인 글들로 도배된 '성토방' 혹은 '토로방'에 지나지 않았다. 많이 오르는 시점에서는 글이 많이 올라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몇 %만 빠져도 다들 '잡주도 이런 잡주가 없다' 식으로 도배를 해댄다. 논리도 필요 없다. 그냥 오르면 좋은 종목이요, 회사 임직원들은 모두 사랑스러운 대상이 되고, 주가가 떨어지면 온갖 욕과 투자를 한 것에 대한 자책의 글, 심지어 저주가 난무한다. 혹여나 '찬티'하는 글이 올라오면 무시와 조롱을 당하기 일쑤다. ('찬티' 글 중에는 일부 개인의 분석이나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다기보다는 뇌피셜 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반복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주식에 입문한 경제잡지 기자 시절, 만나거나 보거나 들은 고수들의투자의 원칙 중에는 '그 기업을 사랑하라'는 대목이 있었다. 추상적인 문장이지만 그만큼 투자 전에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고, 투자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보라는 얘기일 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와 무턱대고 사랑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나 역시 매번 그런 마인드로 투자 결정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엔 시장 흐름을 타고 알지도 못한 채 단타 매매에 열을 올린 기억도 있고, 제대로 분석을 못하고 들어갔다가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은 적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내가 선택한 종목에 대해 애정 어린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그 애정이 지나친 나머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느라 매각 타이밍을 놓쳐 거의 휴지 조각이 된 적도 있지만.)
토론방 글을 읽고 있던 내게 아들이 다가와 보여달라고 했다.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다. 부정적 일색인 것도 그렇지만 어휘와 문장들도 원색적인 경우가 많아서다. 다만 아이에게 왜 보여줄 수 없는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아이가 말했다.
"그건 토론이 아니네. 엄마가 토론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해 설득하는 거라고 했잖아."
일주일에 한 번, 시의적절한 국내외 뉴스를 소재로 아이와 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덕분에 아이는 적어도 토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것 정도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도 아는 것을, 왜 어른들은 모를까.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종목에 투자 중인 투자자들끼리 서로 힘이 되는 관계면 좋지 않나? 어느 주식 관련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주린이(주식하는 어린이, 투자 초보자라는 뜻)인데 위로 좀 받으려고 토론방에 들어갔다가 실망만 잔뜩 하고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시장 흐름과 상관없는 괜한 희망고문으로 투자자의 눈을 가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본인이 손해라고 해도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보는 태도는 버려야 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