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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9. 2021

재야의 고수들 사이에서 브런치 작가를 한다는 것

모든 구독자에게 꾸벅 절합니다

전직 잡지사 편집장, 현직 출판사 대표인 선배를 만났다. 엄밀히 말하면 제작하던 콘텐츠 카테고리가 완벽히 겹치지는 않아서 겉으로만 친한 사이일 수도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20대 무렵부터 비슷한 업의 사이클을 지나온 때문인지 심리적 친밀감이 더했던 사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남편과의 만남을 주선해준 인연까지 더해 선배는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기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툭툭 등장하곤 한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감사의 마음이 큽니다!)


귀국 후 내 삶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업계 선배이자 인생 선배이자 지금은 출판 편집자로 기자 시절의 감각과 역량을 (녹슬기는커녕 더 반짝반짝한) 뿜어내는 중인 선배를 만나 뭔가 힌트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안에 이미 어느 정도 정해놓은 길을 괜찮다, 잘할 수 있다, 판단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편들어주는 사람이 아닌 걸 알기에, 그 객관화된 시선으로 내려줄 '지지'라면 없던 힘도 날 것만 같았다고 할까. 지금의 나는, 이전의 글에서도 말한 바 있듯 차고 넘치던 자신감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상태니까.(흔적은 남아서 다행이다만.)


잡지를 떠나 출판사를 시작한 지 2년이 된 선배는 제법 잘 나가는 편집자 겸 출판사 대표가 돼 있다. 독일에 있을 때부터 여러 채널을 통하여 익히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선배의 사무실에 꽂힌,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며 출판 대기 중인 책들, 쟁쟁한 실력자들과의 계약 건 등에 대해 보고 들으니 새삼 더 실감이 나더라는.


지난 3년의 이야기, 현재와 미래(특히 나의 불안한 미래) 이야기까지 속사포로 쏟아내고 돌아오는 길, 선배가 건넨 책 한 권을 받아 들었다. SNS 등에서 출간 스토리며 저자와의 인연이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까지 확인한 바 있었던 편성준 저자의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가 그것.

한때 카피라이터를 꿈꾼 적 있었던 사람이자, 리드미컬하게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열망을 늘 달고 사는 사람으로서 꼭 한 번은 읽고 싶던 책이기도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돌아오는 길 어딘가에 차를 세워두고 30여분 만에 70여 페이지를 읽어 내렸다. 읽는 즉시 소화가 돼 넘어가면서도, 작가 특유의 필력으로 힘을 더한 인생 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는 마음 언저리에 그만의 무늬를 남기고 지나갔다. 6쇄를 찍었단다. 이래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구나, 싶다.


헌데, 저자의 본인 소개를 읽다가 놀란 부분 하나. 이토록 끼 다분한 저자임에도 이번 책이 첫 저서라는 점, 이 놀라운 재야의 고수가 그간 주로 활동해온 무대 중 하나가 브런치란 사실이었다.

이 지점에서 내가 놀란 까닭이 있다. 고백건대 나는 솔직히 도대체 어떤 기준의 글이 브런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많았다. 정말 꼭 나누고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써도 외면당할 때가 있었고, 가볍게 모바일로 5분간 써 내려간 글이 인기글로 올라갈 때도 있었다. 독자가 사랑한 글, 이라고 해서 보면 도대체 '이게 왜???' 물음표가 다섯 개쯤 붙는 것도 많았다.


헌데 편성준 저자 같은 고수들이(수많은 고수들이)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그분들과 함께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란 것. 내가 뭐라고, 내 글을 구독해주고 좋아요 꾹 눌러 무심한 듯 진한 애정 표현 해준 모든 독자들에게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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