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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8. 2021

나는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됐을까

백화점이 불편해

매일 같은 옷차림이다. 베를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살 때는 나름 패션에 신경 쓰며 살았는데(그 덕에 옷장에는 늘 옷이 넘쳤다) 베를린에서 살 때는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라고는 학교 학부모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유일하게 좀 챙겨 입는 날이 선생님 면담이나 학부모들 초청된 학교 행사, 어쩌다 밖에서 누군가와 약속이 있을 때 등이었는데 그나마도 해가 지나면서 점점 더 편안한 복장으로 바뀌어갔다.

베를린으로 이사할 당시, 각종 TPO를 혼자 짐작하며 챙겨간 많은 옷들은 3년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착장 해보지 못한 채 되가져왔거나 처분당하는 신세가 됐다.


나를 치장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고 어떤 스타일이 유행인지 찾아보고 없으면 구비하는, 그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서 자유롭기까지 했다. 지난날 옷을 사는 행위 자체를 즐기며 내 안의 어떤 불만과 불안을 잠재웠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되었다. 잘 사지 않으니 경제적인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더욱 좋았던 것은, 그래도 어쩌다 쇼핑을 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내 것이든 가족을 위한 것이든, 필요해서든 때론 할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든) 직원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대어보고 걸쳐볼 수 있는 쇼핑 환경이었다.

베를린의 많은 쇼핑몰과 백화점들은 매장마다 직원이 지키고 서 있는 한국과 달리 층마다 마련된 계산대에만 보통 직원들이 있다. 어떤 때는 뭘 물어보고 싶어도 직원이 없어서 직원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할 정도다. 물론 카데베 같은 고급 백화점은 좀 예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매장이 그렇지는 많다.

때문에 쇼핑을 가서 이것저것 걸쳐보고 입어보기도 하고 설령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해도 미안한 맘이 든다거나 불편한 시선을  받는 일도 없다. 하나를 사더라도 충분히 기분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쇼핑의 욕구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해소되었던 것 같다.


베를린 생활을 정리하면서 옷들을 대거 처분하고 오니 의도치 않게 굉장한 미니멀리스트의 옷장이 되었다. 여전히 딱히 차려입고 나갈 데는 없어서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서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몇 번 백화점에 갔더랬다. 제발, 옷 좀 사라는 남편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등이 떠밀린 것도 없지 않았다.

문제는, 쇼핑 감각이 떨어진 건지 수많은 스타일의 옷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나만 바라보고 있는 매장 직원들의 시선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갈 때마다 손님도 거의 없어서 나의 존재가 더 부각이 되니 나는 선뜻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용기조차 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기만 하다 사지 않고 나오는 그 흔한 시추에이션도 왜 그리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온라인 몰에 접속해서는 또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버리곤 했다. 과연 이것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니 아무것도 살 수가 없더란 얘기. 예전 같았으면 사야 할 이유를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안 사도 될 이유를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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