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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4. 2021

그래서 이제 뭘 할 거야?

40대 중반에 하는 진로 고민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는 직설적으로 "이제 뭘 할 거야?"라고 묻고 누군가는 조심스레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라고 묻는다. 사실 속내는 같은 질문이나 그에 대한 내 답은 다르다. 알고 보면 결이 다른 질문이니까. 뭘 할지는 잘 모르겠고 하고 싶은 일은 있다, 가 정확한 대답.


독일 살던 3년 4개월, 경력 단절이라면 단절이지만 나한테는 그곳에서의 삶 자체가 다른 문화권의 체험이라는, 조금은 다른 카테고리의 '경력 쌓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을 잇는 활동(자유기고가로서의)들을 틈틈이 하며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있었다. 언제가 되었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도 내가 할 일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던 자의 자만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을 수 있는데.


휴학 한번 하지 않고 대학 생활을 한 나는 4학년 2학기에 취직을 했다. 2학기엔 졸업 논문 내는 것이 학업의 전부였으니 실질적으론 7학기 만에 대학 생활이 끝난 것이었다. 그 후 이직을 하면서 2주 길게는 한 달여 쉬는 것을 제외하곤 늘 직업 현장에 있었다. 독일 가기 전 몇 달은 개인사업자로 살긴 했으나 20년 가까이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이었다. 직함과 직책의 차이가 있었을 뿐.


그러니까 지금의 시기는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무직자로 지내는 시기인 것이다. 신용카드 한 장을 새로 발급하려고 해도 직업부터 물어서 현재 무직자의 신분임을 한번 더 상기시키는, 그런 비슷한 상황에 종종 처할 때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좌절감이 올라오는 시기 말이다.


독일에서 3년 넘게 아이와 찰싹 붙어지내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하는가에 고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교육(한국에서 '교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카테고리에서 벗어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독일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겪으며 본격적으로 교육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적 위주 입시라는 결과를 목적으로 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고 인성을 높이고 세상을 보는 시각과 자기만의 철학을 갖춘, 그리하여 현명하게 인생에 대한 자발적이고 건강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교육.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교육의 구체화를 위해 소소한 노력들도 했더랬다. (적어도 그 결과 우리 아이는 그렇게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와 실행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던 나는, 귀국 후 친한, 이미 한국식 교육 현장에 몰입한 몇몇 학부모들을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었다. 내 이상이, 방식이 틀려서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되고 마는 현실이 서글퍼졌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때때로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있으나 나는 여전히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옳다고 믿는다.

본의 아니게 40대 중반에 하고 있는 나의 진로 고민 자체가 지나고 보면 또 훗날을 만들어낸 건강한 고민의 시기였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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