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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3. 2021

우리 집으로 오실래요?

사적 공간에서의 만남이 주는 의미

귀국 3개월, 격리 기간을 제외하고 엄밀히 말하면 2개월 반이 지났다. 정착을 위한 일들 혹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나의 시간은 이제야 시작됐다.

그래도 나름 꽤 오랜 사회생활 및 다양한 인간관계로 귀국 인사 차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데 일정 정리보다 어려운 게 있으니 바로 장소 선택의 문제!

핫하다는 장소들, 전에는 많이 찾아다니기도 했고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모임 장소의 트렌드도 잘 알고 있다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와, 귀국해보니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 서울이 워낙 빨리(실제 장소든 트렌드든) 변한 까닭도 있겠지만 '핫 플레이스'와는 거리 먼, 도시는 베를린이나 생활은 거의 빈티지 혹은 내추럴에 가까웠던 3년 이상의 지난 삶이 바꿔놓은 몸과 마음의 감각 때문일 게다.


게다가 망할 놈의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붐비는 곳에 발길도 눈길도 가지 않는 이유까지 더해져, 나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만남의 장소를 고르느라 스트레스가 쌓였다.

여건이 괜찮다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할 수 있지만, 대개는 나와 달리 특정 시간, 즉 점심시간에만 만남이 가능한 터라 자연스레 멀찍이 거리두기가 가능한 장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고민의 끝에 떠오르는 장소는 우리 집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사고방식으로는 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그것도 뭐 그다지 자랑할 것도 못되는(집이란 게 자랑의 대상은 아니지만) 공간에 가족 외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이 못내 불편하고 부담이었을 텐데 베를린 사는 동안 누군가를 집에서(우리 집이든 남의 집이든, 크든 작든) 만나는 데 익숙해진 나였다.


독일 사람들은 보통 파티를 해도 홈에서 하고 친한 가족단위의 모임도 집에서 이뤄진다. 대단히 뭔가를 차려내지도 않는다. 빵 몇 종류에 치즈, 몇 가지 채소나 과일, 커피 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접을 받는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기보다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렇게 각자의 사적 공간을 오가고 나면 그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생각해보니 나 역시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몇 년 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목적이니 그렇다면 우리 집이 최적인 셈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배달이 가능하니 제대로 된 식사를 겸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니 누군가 오는 날 청소기 한번 더 돌리는 수고가 왜 없을까만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는 데 그 정도로 수고는 기꺼이 할 수 있는 일.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약속을 잡으며 말한다.

"우리 집으로 오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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