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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2. 2021

김영민 교수와 함께 좌절로 시작하는 하루

재밌는 통찰, 유머러스한 촌철살인

20년 넘게 글밥을 먹고살았다. 글밥이라 하면 여지없이 민망해지는 지점도 없잖은 것이, 그렇다고 내가 전문 작가는 아니었으나 결국은 글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업을 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또 귀한 정보도 됐으리라 믿는다. 글을 잘 쓰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진심을 담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단 것만큼은 진실이다. 물론 정말 쓰고 싶지 않은 글을 '밥벌이' 때문에 써야 했을 땐 그저 여백을 채우느라 급급했던 적도 있었을 게다.


하나 더 끊임없이 더 잘 쓰고 싶다는 갈망은 항상 마음속에 존재해왔다. 글을 쓰는 기술은 분명 많이 쓰면 쓸수록 느는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잘' 쓴다는 것은 어떤 테크닉적인 문제이기보다 한 문장 한 문장 힘이 있는 것들의 조합이기를 바랐다.

나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이 들게 하는 많은 문장가들이 있었겠으나 요 몇 년간 나를 좌절케 하는 한 명은 고민할 것도 없이 김영민 교수다. 단편 단편 그분의 칼럼을 대할 때보다 여러 글을 묶어 펴낸 책들은 그야말로 힘이 막강했다. 단 한 줄도 한 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그 힘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지!

독일에 살면서 그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여러 번 반복해 읽는 사이 신간 '공부란 무엇인가'의 출간 소식을 듣고 그 책장을 넘기는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제목마저 고리타분한 공부란 무엇인가, 라니. 다른 저자의 책 제목이 저러했다면 수많은 신간들 속 원 오브 뎀이 됐을 텐데 과연 그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함이 쌓여갔다.


드디어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여지없이 폐부를 찌른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 수긍하지 않을 수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나, 하는 생각에 매번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그의 글이 명문인 것은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통찰력을 드러낸다는 데 있는 듯하다. 깊이가 있는데 전혀 어렵지도 않고 아픈 데를 찌르는데 유머러스하다. 아, 이 내공을 얻는 방법이란 역시 공부밖에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역시 그의 책과 함께 좌절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아, 정말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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