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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r 01. 2021

도시락 부심

엄마를 움직이는 너의 한마디

독일에 살 때, 아이를 위해 매일 스낵박스를 준비해야만 했다. 독일 학교들에는 으레 아침 9시~10시 무렵 간식 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오전 8시가 등교이다 보니 아마도 아침도 먹지 못하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어서일 거라고, 혼자 추측했지만 우리 집 아이는 그 부류가 아니었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싶어서 제발 일찍 깨워달라고 할 정도로 아침 식사가 중요한 아이를 위해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야 했다.


아침을 든든히 챙겼으니 고작 한두 시간 지난 후 먹을 간식은 좀 가벼워도 됐을 텐데 그게 또 그렇지 못했다. 독일학교 점심 식단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는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간식 박스를 거의 점심 도시락 급으로 싸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다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대충 싸 보내면 배가 고파져 다 먹게 돼있다고 했지만 한창 키 클 나이의 아이를 그냥 배고픔에 못 이겨 먹게 하고 싶지는 또 않더란 말씀.


게다가 한국에선 일한다고 기껏해야 주말에나 아이 식사를 직접 그것도 간단식으로 챙겨주었으니, 전업주부로 살게 된 독일에서의 시간만큼은 그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일 아침 김밥을 싸거나 유부초밥을 만들거나 심지어 치킨을 튀겼었다. 것도 지루할 수 있으므로 내용물을 매번 바꿔가면서. 사이드로는 과일 한두 종류와 독일에선 진짜 비싼 음료 축에 드는 야큐르트도 한 병씩 넣었더랬다. 정성이 과해 거기다 사랑해, 로 시작해 사랑해, 로 끝나는 작은 쪽지까지 잊지 않고 써서 넣어주었다.


친구들은 모두 아이의 스낵 박스를 부러워했다고 했다. "황제급" 스낵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스낵 타임이 되면 친구들이 너도나도 하나만 달라고 줄을 섰다고 했다. 내가 가장 정성을 갈아 넣은 쪽지 따위에 애들은 관심도 없었지만 아이는 매일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어찌 더 열심히 도시락을 싸지 않으랴.

한국에 돌아와서도 독일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여전히 모닝 스낵 박스를 준비해 가야 한다. 다행인 건 점심 메뉴가 한국식 입맛을 고려해 나오는 덕분에 독일 살 때처럼 김밥 등을 싸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8시 등교에 여전히 푸짐한 아침 식사를 원하는 아니 때문에 새벽 시간은 지금도 정신없지만 과일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 간식 박스 덕분에 얼마나 편해졌는지.


사실 처음엔 과일 한 두 종류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어쩌다 3~4종으로 늘긴 했지만 김밥 싸던 시절에 비할 수 있을까. 사실 거기에는 비하인드가 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걸 싸오는지 궁금해 묻자 아들의 답이 이랬다. "그냥 보통 빵 하나 가져오는 애가 많아. 오늘 ㅇㅇ가 내 스낵 보고 자기는 왜 이거 밖에 없냐고 투덜거렸어. 엄마는 정~말 잘해주는 거야." 어깨를 으쓱, 아이는 여기서도 스낵 박스 부심이 있는 모양이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그 후 준비하는 과일 종류가 늘었고 어떤 날은 스페셜 이벤트로 아이가 좋아하는 카스텔라며 마를렌, 휘낭세 등을 과일과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이거 혹시 아이가 나를 말 한마디로 길들이고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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