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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pr 22. 2021

'지구의 날'에 떠올리는 그린 위크의 기억

환경 운동에 참여하는 즐겁고 자발적인 경험에 대하여

"엄마, 오늘 지구의 날이래."

아이를 데려다주는 차 안, 라디오에서 DJ가 그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몰랐어. 오늘이 지구의 날인 줄 알았다면 초록색 옷이라도 입고 학교에 가는 건데 아쉽다. 너 학교에서 '그린 위크' 했던 거 기억나지?"


2년 전 아이가 다니던 (독일의) 학교에서 일주일간 '그린 위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구의 날'이 있는 4월은 아니었고 9월에 진행했었는데요, 그때 한창 그레타 툰베리의 'Fridays for future'로 시작된 학생들의 자발적 환경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금요일마다 학생 신분이 아닌 환경운동가가 되어 학교 가는 대신 길거리로 나왔던 10대 청소년들의 이 운동을 두고 당시 독일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했었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환경 운동이 이유라 해도 '결석'은 안된다며 강경한 입장이었고요. 

그런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좀 달랐어요. 선생님들이 금요일의 환경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전체 학부모들에게 '아이가 금요일에 환경 운동 참여로 인해 학교에 못 온다면 알려달라'는 식의 공지문을 발송하며 은근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예 '그린 위크' 퍼포먼스를 하겠다며 공표를 하더군요. 9월 넷째 주에 이뤄진 이 행사는 금요일에 시작해 금요일에 끝났는데 매일 환경에 관한 하나의 주제로 그 날 하루를 온전히 겪어보는 식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가 하면, 

-금요일 '웰컴 그린 위크 데이' :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그린 색 혹은 깨끗한 공기를 상징하는 블루 색의 옷을 입고 등교하는 날. 

-월요일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알기' : 학교 점심시간에 얼마만큼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고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날. 

-화요일 '지구의 날' :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기 위해 온종일 불을 끄고 컴퓨터 플러그도 뽑고 모든 디지털 디바이스도 다 off 상태로 지내보는 날. 

-수요일 '누드(nude) 푸드' : 매일 아이들이 가지고 가는 스낵 박스에 플라스틱, 종이, 포일 등을 일절 사용하면 안 되는 날. 

-목요일 '로컬 푸드 데이' : 독일에서 나는 로컬 푸드로 스낵 박스를 채워오는 날. 

-금요일 '워킹 스쿨 데이' : 학교에 걸어서 등교하는 날. 다시, 그린과 블루 옷을 입고 등교하기. 

그리고, 사진 콘테스트 : 학생들이 직접 찍은 '그린 포토' 제출하기. 


사실 마지막 '워킹 스쿨 데이'는 실천하는 데 한계가 있긴 했어요. 아이들 중 상당수가 원거리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스쿨버스도 운행 중이었고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부모님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학교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죠.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되 어렵다면 학교까지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곳곳에 배치된 지도 교사를 만날 수 있는 지점에서 합류해 '워킹 데이' 경험에 동참하라는 것이 그것이었어요. 우리 집 아이도 그날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이상 떨어진 지점에 내려 선생님과 함께 걸어갔고요. 

독일의 한 서점에서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던 '플라스틱 없는 어떤 아이의 생일 파티'에 대한 이야기 책. 

'그린 위크'가 진행되는 일주일 내내 아이는 집에 오면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주곤 했어요. 말로만 환경을 생각하라,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던 셈이죠. 그린 위크 퍼포먼스를 진행한다는 이메일을 받고 학교의 '즐거운' 기획력에 박수를 보냈던 나는 그 한주일 동안 아이가 환경에 대해 경험해보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집에 와서 나누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런 교육이야말로 진짜'라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특히 첫 금요일과 마지막 금요일, 학교 앞에서 직접 목격한 그린과 블루의 물결은 아름다운 장면을 넘어 나의 마음속에도 어떤 '씨앗'을 심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그 작은 행동 하나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일주일을 통째 환경을 생각하며 보낸 '그린 위크'는 특별한 이벤트이긴 했지만  독일 학교에서는 사실 아이들 스스로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할 만한 기회가 많았어요. 일례로 학교에는 스튜던트 카운실이라는, 3학년 이상의 학급에서 각 반 2명을 대표로 선발해서 모인 학생 자치 의회가 있는데요, '의회' 답게 각 분과별로 활동을 하게 돼요. 그 분과 중에 '환경 분과'가 포함돼 있어서 학교 내에서, 어떤 경우에는 학교 밖에서 환경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발적으로 고민하며 논의를 하고 있죠. 3학년 때 스튜던트 카운실로 활동한 우리 집 아이는 '스쿨 이벤트 분과'라고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분과에 속해 있었는데요, 3학년 말 즈음에는 환경 분과와 스쿨 이벤트 분과가 협업해 '환경을 주제로 한 즐거운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하더군요. (실제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진행이 되지는 않아 아이가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몇 달 전인가, 한국 교육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교과서가 너무 낡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매해 개정판이 나오고는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죠. 대표적으로 제시된 게 '환경 하면 아직도 북극곰 이야기만 나온다'는 대목이었는데 정말 공감되는 이야기였어요. 이제 환경 문제는 정말 시급한 상황이 됐잖아요.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요.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어른들의 몫이지만 아이들이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참여하던 온라인 과학 수업에 지금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 수업에서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을 위한 프로젝트 콘테스트를 한다고 몇 달 전 예고를 했었어요. 나는 이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아이가 오늘이 '지구의 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 프로젝트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슬쩍 알려주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독일에서 참여해봤던 '그린 위크' 경험을 참고해서 말이죠. 그 과정에서 아이는 또 생각이 자라나겠죠. 


조금 이따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나는 노란색과 파란색 옷을 입고 가려고 합니다. 노랑 대신 초록이면 더 좋았겠지만 찾지 못해서 내린 차선책이에요.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노랑과 파랑을 섞으면 초록이 되잖아."

물론 옷 색깔보다 중요한 실천들이 많죠. 다만 이렇게라도 엄마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아이의 생각을 격려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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