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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11. 2021

무엇이든 물어? 아니, 의논하세요

얼마 전 아이는 건강과 체력 등의 이유로 합기도장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 달 전쯤, 남편과 저는 아이에게 잘 맞을 운동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그중 몇 가지를 제안했죠. 그중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합기도를 적극 추천했고요. 학교 일정 등을 고려해 다닌다면 어떤 요일에 하는 게 좋을지까지 미리 결정한 후 아이에게 넌지시 말했더니 이렇게 대응하더군요. “엄마 아빠가 결정까지 다 한 거야? 나한테 먼저 의견을 물어봤어야지. 나는 지금 합기도장에 다닐 생각이 없어.”  

단호하더라고요. 남편과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의견을 묻고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다 보니 이젠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쉬운 게 없네’라고 웃어넘기면서도 좀 더 이야기해보고 결정하자고 상황을 열어두었죠. 생각이 없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말 잘 듣는 아이보다 자기표현이 가능한 아이로


저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보다는 자기표현은 자유롭게 할 줄 아는 아이기를 바랐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데 유치원에 상담을 갔을 때였어요.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두고 표현하기를 ‘선생님들이 정말 좋아할 아이’라며 ‘나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사랑받는 학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분명 칭찬으로 한 이야기였겠지만 저는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 행간에 혹시 아주 조금이라도 ‘선생님 말씀에 토 달지 않고 잘 따르는 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유치원 5세 반 시절,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재우면서 여느 때처럼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마침 유치원 관련된 이야기책이었어요. 아이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유치원 선생님이 무섭다’며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더군요.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었어요. 그때까지 아이는 매일 반복적으로 ‘오늘 유치원에서 어땠느냐’고 묻는 통상적인 질문에 습관적으로 ‘좋았다’ ‘재밌었다’ 고만 답하는 식이었거든요. 상황인 즉 이랬습니다. 바닷속 그리기를 했는데 아이가 새 한 마디를 그려 넣었다고 해요. 선생님은 바로 새는 바닷속에 있으면 안 된다며 지적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아이는 위축됐을 텐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아이를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 바로 앞 바닥에 앉게 한 후 선생님 그림을 잘 보면서 그리라고 했다는 거였어요. 아이는 그 상황을 자신이 잘못해서 벌을 받은 걸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껏 펼쳐야 할 나이에 어른의 사고와 지식에 맞지 않다고 해서 지적부터 하고 보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이 앞에서 선생님을 비판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말해주었어요. “바닷속에도 새가 있을 수 있는데? 펭귄 알지? 펭귄도 일종의 새야. 수영도 얼마나 잘하는데! 엄마 생각엔 네가 아주 잘 그린 것 같은데 선생님이 뭔가 헷갈리신 것 같아.”  

새는 하늘의 동물, 물고기는 바다의 동물, 이런 류의 정보를 알려주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왜 그렇게 그렸는지 생각을 물어본 다음에 정정을 해주기만 했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선생님이 지적할 때 왜 그렇게 그렸는지 아이가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가 그 상황에 대해 ‘선생님 무섭다’는 식으로 결론내고 주눅 드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고 말이죠.  

 

어떤 경우이든 상대가 누구이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커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일을 겪으며 더 단단해졌어요.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일을 한 두 차례 더 겪은 후 유치원을 옮기는 게 어떨까 고민이 됐을 때도 가장 먼저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사실 결심을 한 상태였지만 아이가 반대한다면 존중할 생각이었어요. 여섯 살이지만 아이에게는 첫 사회생활이고 무조건 부모의 판단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당시 아이는 ‘지금 유치원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 다녀보고 싶다’는 식으로 답했어요. 지금도 저는 이 대답이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혹은 ‘싫어’라는 단답형이 아닌 것도 그렇지만,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좋은 태도’까지 갖춘 답이었으니까요.  

 

유치원을 옮기는 것 같은 큰 결정이 아니더라도 저는 아이와 대화가 되기 시작할 때부터 가능한 한 아이의 의견을 묻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소하게는 외식 메뉴를 고를 때부터 그렇게 했는데 지겹도록 같은 메뉴를 먹어야 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아이가 ‘예스’할 때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설득을 해야만 했지요.  

지금껏 학원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지만 몇 차례 학습이나 배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을 때도 아이 의견이 가장 중요했어요. 보육 단계를 지나 교육으로 넘어오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스스로 결정하고 원하지 않으면 배워봐야 의미 없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죠. 물론 내 아이 성향을 파악하면서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건 당연히 부모의 몫이어야겠죠.  

미술 수업과 수영은 저의 제안을 아이가 흔쾌히 받아들여 진행했었고 피아노 학원은 아이가 먼저 가고 싶다고 말해 시작했어요. 세 가지 모두 굉장히 오랜 시간 배웠지만 본인이 직접 발제하고 선택했던 피아노 수업의 결과치와는 분명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발적 선택으로 시작한 배움의 효과란


여섯 살 여름부터 자발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열두 살인 지금도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독일로 이사하면서,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쉬었던 몇 달을 제외하고는 5년째 레슨을 계속 받는 셈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악보를 보고 치는 수준을 넘어 즉흥곡을 연주하고 어렵지 않게 자신의 곡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아이는 여전히 더 배우기를 원하고 저는 그 의견을 존중하고 있죠. 

누군가는 전공을 할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도 물어요. 그러나 아이에게 피아노는 단순히 악기 하나를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일단 그 첫 시작부터가 아이의 자발적 선택이었고 피아노를 통해 다른 악기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쌓여 도전하는 기회도 됐으며 결과적으로 음악이 장래 희망 중 하나가 됐으니까요. 본인 의지로 선택한 길이 아이 삶에 어떤 의미가 되어 왔는지 옆에서 봐온 저는 아이의 판단과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죠.  

 

물론 아이들의 의지력이란 게 그렇게 꾸준하기 쉽지 않아요. 당연히 중간에 위기가 찾아오죠. 그렇게 피아노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그만두고 싶어 했어요. 아이 의견을 존중하는 게 맞지만 이유를 알아야 했죠. 아이 의사를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가 매번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둔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아이는 레슨 시간 40분 중 피아노 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고 했죠. 한 명의 선생님이 여러 명의 아이를 가르치는 학원 특성상 수업의 대부분을 아이는 이론서의 문제를 풀고 있었던 거였어요. 흥미를 갖기 힘든 분위기라는 판단이 들어 저는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레슨 하는 것을 제안했어요. 그리고는 덧붙였어요. 그렇게 몇 달 해보고 그래도 정 싫으면 그때 그만두자고 말이죠.  

 

아이가 유아기 때부터 생각과 의견을 묻고 그 질문을 통해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바에 대해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며 비교적 길을 잘 안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뼈 아픈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가 끝까지 원하지 않았던 태권도 학원을 억지로 보낸 거예요. 호신용 운동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결국엔 아이도 좋아하게 될 것이란 자기 합리화를 해가며 밀어붙인 결과는 ‘앞으로 절대 태권도는 배우지 않겠다’로 귀결되고 말았어요. 일주일 정도 경험해본 후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결정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가 나중에 시작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아이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요가 빚어낸 실패는 두고두고 교훈이 되었죠.     

지금도 우리는 아이가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 반드시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항상 의견이 일치할 수도 없고 아이 판단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줄 수 없을 때도 많아요. 그러나 최선의 결정을 위해서라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는 지점을 목표로 대화하고 의논합니다.  


다시 합기도 이야기로 돌아와, 아이가 다닐 생각이 없다고 한 뒤로도 한 달여에 걸쳐 틈나는 대로 의논을 했어요.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엄마 아빠의 의견을 열심히 전달했고 아이 요구대로 직접 가서 한 시간 동안 참관을 해보기도 했죠. 설득과 논의 끝에 우리는 ‘일단 3개월을 다녀보고 그 후 다시 논의하자’는 데 합의했죠.

재밌게도 첫날 수업에 다녀온 아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를 설득해줘서 고마워. 합기도 잘 시작한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며 합의를 도출하느라 걸린 한 달의 기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합기도를 선택했고(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죠^^) 자기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게 됐으니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습관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 대화하는 습관이며 의논하는 분위기도 갑자기 만들어지기 어려워요. 아이가 너무 어린데 그럴 필요가 있나, 그게 가능할까, 생각하는 시점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참 힘들게 아이 키운다'라고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힘들지 않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재밌고 저 역시 배워가는 시간이거든요. 물론 아이가 더 자라고 어느 순간에는 아이 의견보다 부모의 의지대로 해야 할 지점이 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화하고 의논하며 결정하는 습관 속에 자라다보면 부모가 어쩌다 강한 의지를 보이더라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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