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갈등 속에서 찾아내는 통찰
최근에 저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애인의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성격이 처음엔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그런 성격이 때로는 무계획성과 지나친 낙관주의로 비춰져 갈등을 빚고 있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특정한 성격이나 면모를 발견하고, 그 부분에 깊게 빠져들게 되다 보면 어느새 그 면모가 우리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싫증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우리에게는 부정 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부정적인 요소를 더욱 잘 기억하며, 초기의 설렘과 긍정적인 특성은 의식적으로 상기시키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고 곧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매력으로 다가왔던 그 사람의 여유롭고 긍정적인 태도가 결국엔 무책임과 해로운 낙관주의로 바뀌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럴까요? 우리 인간은 왜 이처럼 양면성을 가질까요?
예전에 저는 한 문장에 대해 깊게 고민하곤 했습니다.
“If you can't handle me at my worst,
then you sure as hell don't deserve me at my best."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부터 수년 동안, 이 말은 제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았습니다. 사람의 최악의 모습과 최선의 모습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빛나는 면모를 얻기 위해서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모습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특정 시점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문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경험, 성찰이 필요한 문장. 제게는 이 문장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마다 좋은 면모와 나쁜 면모가 공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애정이라는 것은 그런 모든 부분을 포용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저에게 인간 관계와 사랑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선사했습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려면, 그것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결점까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모습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시기의 모습까지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를 포함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 중 일부가 우리를 싫증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면은 항상 함께 존재합니다. 100% 좋은 성격이나 나쁜 성격은 없으며, 이들은 항상 공존하며 교차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일생에서 그의 봄과 겨울을 함께 보게 되듯, 사랑하는 과정에서 양면성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성장의 한 단계입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미소와 하트 모양의 점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지만, 이별 후엔 그녀의 삐뚤빼뚤한 치아와 바퀴벌레 같은 점을 보며 거부감을 표현합니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변한 것이 없음에도 우리의 감정과 인식은 왜 이렇게 크게 변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선' 때문입니다. 이 주관적인 시선이란, 결코 가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진짜 창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내 안의 관점과 시각, 각도를 약간씩 조정한다면, 싫어하는 어떤 것들마저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꼼꼼하지 못한 것 같아 어느 샌가 거슬렸던 그 사람의 성격이라 할지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것이 바로 내가 처음에 사랑했던 그 여유로움일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 면모를 가집니다. 달라진 건 오직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일 뿐입니다. 그러니 처음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우리는 이 양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다음 글에서 더 깊게 탐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