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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태형 Sep 01. 2022

오합지졸의 각자도생

아파트 짓는 법 (4) 가설공사

  어떤 조직이든 그 안에는 세분화된 역할이 있다. 그것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을 갖추는 것이 조직의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가 필요하고, 어느 위치(측면, 중앙)에서 어떤 성향(수비 중심,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선수에게 필요한 역량이 달라진다. 세상에 수비수만으로 이루어져서 골을 넣는데 서투른 팀도, 공격수들만 날뛰면서 집안 단속에 무심한 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건설 현장에서도 현장 이곳저곳을 누리면서 협력업체와 투닥거려야 하는 건축기사가 있고, 익숙한 바이브로 현장이 부드럽게 굴러가게 만드는 대리와 과장, 회사의 기준에 맞게 현장 전반을 관리하는 팀장이 있을 것이다. 사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동탄 현장은 이 첫 단계부터 삐걱거렸다.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두 분의 공무과장(간단히 말해 현장의 행정과 재무를 관리하는 직책. 규모가 큰 현장이 아니라면 보통 한 명이다)님이 있었다. 현장에 소장님보다 먼저 투입되어 착공 준비를 해왔던 A과장님은 첫만남부터 소장님과 맞지 않았다. 그 사실을 양쪽 모두 금방 인지했을 것이다. 소장님은 현장이 개설되기도 전에 본사에 공무과장의 교체를 요청했고, 그렇게 B과장님이 공무담당으로 현장에 와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던 참에 내가 도착했다. 아마 A과장님은 소장님과 시작부터 대립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후 나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B과장님은 A과장님보다 참을성이 많았고(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 왔기에 경력은 뛰어났지만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에 조금은 덜 익숙했다. 이것은 앞으로 동탄 현장의 모든 구성원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으로 자리잡는다. A과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나는 곧 갈 사람이야. 편하게 해도 괜찮아. 대신 고생 좀 해야겠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현장에서 떠나보낸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듣게될 말이다.

  이참에 초창기 현장 구성원을 기억해보면, 현장의 ‘넘버투’라고 할 수 있는 총무부장님은 여성으로서 회사 역사상 최초로 부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고졸직원으로 입사해 관리직으로만 오랜 시간 커리어를 이어왔지만, 토목현장에만 있다가 건축현장에 처음으로 발령 받았다. 존중받아 마땅한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여성’과 ‘토목현장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건축직이 지닌, 관리부를 경시하는 특유의 문화가 소장님으로 하여금 총무님을 경시하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건축팀장으로 현장에 온 K차장님은 나름 회사에서의 경력과 경험이 많있지만, 웃프게도 소장님에게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위 ‘찍혔다’. 소장님은 이렇게 첫인상으로 직원을 대하는 경우가 잦았다. 처음부터 틀어지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틀린 말이 되어 소장님의 호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무B과장님과 내가 있었다. 나야 뭐,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가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동탄 현장은 소장님의 통탄을 피할 수 없는,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오합지졸의 현장으로 시작했다. 그의 밑에서 모든 직원은 평등했다. 내가 그들을 업신여겼다는 뜻은 물론 아니지만, 다른 현장에서 마주쳤으면 존재했을 그들의 권위가 소장님의 절대법 앞에서 옅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보다 훨씬 어른들에게서 느껴지는 측은함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장이 개설되기 전부터 사무실에서는 매일 아침 회의가 열렸다. 각자가 해야할 일들을 알아서 찾아서 공유하는 자리였다. 현장 개설의 업무는 해본적이 없기에 ‘저는 무얼 해야하죠’의 눈빛을 K차장님께 보냈지만 그분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현장 개설 초기에는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강제로 평등해진 구성원들은 각자가 해야할 일을 찾아서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모두가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것이 꼭 나쁜 문화인 것만은 아니었다. 보통 이런 회의를 하면 팀별로 그 주의 이슈를 정리해서 팀장이 보고를 한다. 주간업무보고의 책임자는 팀장이고, 실무자들에겐 회의에서 발언을 할 주제도, 기회도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장님은 모두를 각자 담당한 업무의 책임자로 인정해주었다. 팀장님과 나의 업무는 달랐고,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일을 보고해야 하는 식이었다. 말단의 직원도 소장님께 일대일로 업무를 보고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소장님 본인이 기사 시절, 현장에 가졌던 불만을 표출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단점이라면 소장님과 실무를 직접 조율해야 하다보니, 중간자로서의 팀장의 존재감이 희미해진다는 것이었다. 회의 문화 만큼은 스타트업 뺨치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평등한 실무자였다. 부장인 총무님도 예외는 없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의 대화.


소장 : 총무님, 오늘 할 일에 대해 말씀해보세요.
총무 : 예, 저는 뭐, 현장이 잘 돌아갈 수 있게 소장님과 직원들을 잘 보살피는 게 중요하지요.
소장 : 총무님! 아니 그런 거 말고요오. 해야 할 일을 말씀해보시라고요, 일을!
총무 : …….
소장 : 하, 아니 총무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관리직이 해야 할 일이 있을거 아니에요오! (…)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면,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기 위해 앉지도 않고 서서 각자의 업무를 공유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취지야 이해하지만, 역시 불필요한 말들이 특히 대표로부터 늘어나면서 이 회의는 정신은 물론 신체까지 고단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전락한다. 우리 현장의 회의는 일단 매일 아침 열렸고, 큰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전날 같은 업무를 보고했다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소장님은 한번 호통을 시작하면 두 시간을 끊이지 않고 불을 뱉어내는 능력자였다. 와, 솔직히 두 시간 동안 모두가 입도 뻥끗 못하고 혼나는 시간을 보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오래, 많이, 다채로운 표현으로 욕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면으로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드디어 현장이 개설되었다. 이제 우리의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양도받았다. 공사를 위해 현장을 세팅하는 공정을 ‘가설공사’라고 한다. 현장 가설사무실을 설치하고, 측량하여 표시한 경계를 따라 휀스와 게이트를 설치하고, 휀스에 디자인을 입히고, 공사용 전기망을 끌어오고, 수도를 설치하는 등 토목공사를 착공하기 전에 현장을 공사가 가능한 정도로 갖추어놔야 한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8개월 정도의 경험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일을 배우는 입장이었다. 이전 현장은 이미 개설된 상태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가설공사는 처음이기도 했다. 공사차장님께 물어가며 일을 진행시켰다. 여기서 문제는 차장님이 아는 방법과 소장님이 아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민 기사, 이거 왜 이렇게 했나?”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1. K차장이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요?’, ‘2. 아, 제가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정도였는데, 진실이 무엇이든 둘 다 써봤지만 소장님의 호통을 피할 순 없었다. 일부 사실대로 1번으로 대답했다간 그 자리에 차장님이 소환될 것이다. 2번으로 대답했다간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천방지축 기사가 될 것이었다. 현장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소장님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자, K차장님도 손을 놓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소장님에게 직접 일을 배웠고, 어떤 방식이 맞는지 틀린지 따질 겨를도 없이 지시를 이행해야 했다. 혹은 알아서 잘 해야 했다. 책임은 내가 진다. 어차피 각자도생의 현장이니까.

  그럼에도 현장은 연습의 공간이 아니었다. 가설공사 단계에서 내가 진행시켰던 몇 가지 일들이 현장이 끝날 때까지 문제를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현장의 메인 게이트에 설치한 세륜기가 있었다. 세륜기는 현장의 흙을 묻힌 차량의 바퀴를 닦아주는 설비다. 공공 시설인 도로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위해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 세륜기에 차량이 서면 밑에서 물이 나와 바퀴의 흙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세륜기는 도로보다 낮게 설치해 흙탕물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레벨을 측량해 설치한 세륜기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내가 잘못한거지 뭐) 도로보다 약간 높은 위치로 앉았다. 그리고 바퀴의 흙을 품은 오염수가 현장 밖으로 세어나오기 일수였다. “아니, 민 기사. 이거 누가 설치한겨.” 나는 휘파람을 불며 현장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나는 과연 책임을 제대로 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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