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된 해외에 대한 호기심
“굳이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질문은 ‘해외에서 살아보자’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해외에 살기 위해서는 영주권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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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외를 경험한 건 대학교 캄보디아 봉사활동이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필리핀, 영국, 호주를 거쳐
결국 캐나다라는 나라에 멈추게 되었다.
(나라 이름 나열이 많은 것 같아 걱정했지만, 내 발자취를 정리하자면 이 순서를 빼놓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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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지는 정했으니,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차례였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조건은 명확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했고, 사무직에서의 커리어도 마땅히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화이트칼라 직군은 배제됐다.
남은 선택지는, 캐나다에서 ‘부족직업군’으로 지정된 블루칼라 분야였다.
하지만 나는 단지 영주권을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고르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이어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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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공은 Carpenter & Renovation Technician.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목수 겸 리모델링 기술자’다.
도면을 보고 구조를 짜고, 손으로 재단하고 조립하는, 완전한 기술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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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나는 망치를 제대로 쥐어본 적도 없었다는 것.
나는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했고, 공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2017년 9월 입학을 앞둔 나는,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평택 미군기지 현장에 들어가 막노동을 했다.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한 그 5개월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술자’로 살아가기 위한 각오를 만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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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목수의 길을 걷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정은 곧, 나이아가라 컬리지의 낯선 교실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