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세계관은 오랫동안 숫자와 입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수백~수천억 단위의 돈이 오가는 부동산 펀드를 운용하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투자제안서의 수익률을 검토를 하는 것이 저의 세계관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건물의 가치는 임대료와 공실률, 자본환원율 같은 명확한 숫자로 계산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배운 부동산금융이었고, 지난 15여 년간 부동산 실무로 채워나간 세상의 문법이었습니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이성적인 세계였습니다.
변화의 바람은 실무에 ‘AI’라는 것을 이용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업무 효율을 높여줄 도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반복적인 개발사업 수지분석을 자동화하고, 흩어진 데이터를 모아 상권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모델을 만들면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업무 중에는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AI에게 파이썬 코딩을 지시했고, 주말에는 새로운 AI 트렌드 분석 유튜브를 시청했습니다. 코드를 실행하고 결과가 나오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숫자의 세계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AI를 깊게 파고들수록, 제 머릿속은 알 수 없는 질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AI 모델은 성수동의 한 골목이 '힙스터의 성지'가 되고 주변에 오피스가 새로 신축되는 그 예상을 뛰어넘는 현상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데이터상으로는 분명 강남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이, 누군가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감성’으로 포장되어 비싼 값에 거래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모델은 수많은 ‘무엇(What)’을 알려주었지만, 하나의 ‘왜(Why)’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AI는 건물의 연식과 면적, 수익률, 입지는 분석했지만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욕망, 불안, 애착, 과시욕 같은 것들은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차가운 이성뿐만이 아니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저는 그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결정적인 계기는 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서 AI의 ‘인지 편향(Cognitive Bias)’과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내용을 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복잡한 문제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각의 지름길을 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합리적 오류를 범하는지를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였습니다. 그 순간, 흩어져 있던 질문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투자자들의 군중심리, 특정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 선호, 손실을 회피하려는 본능. 이 모든 것이 부동산 가격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습니다. 결국 부동산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건물의 스펙과 건물이 위치한 입지뿐 아니라, 그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래 기술이라 믿었던 AI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이버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뒤늦은 방황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결정은 커리어의 단절이 아닌, 확장에 대한 가능성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부동산 전문가로서, 그리고 AI를 다루는 실무자로서 보조 무기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재무모델 너머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데이터의 이면에서 결과의 숨겨진 이유를 읽으려 합니다. ‘평당 가격’이라는 숫자 뒤에 숨은 ‘공간이 주는 위안’의 가치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심리학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선택까지 분석하는 AI 모델을 만들 수 있자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동산 전문가인 제가 AI를 공부하다 심리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입니다. 숫자와 논리의 세계에서 출발해, 이제 막 사람의 마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저의 여정을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꾸준히 기록해 나가려 합니다.